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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유계자/바닥의 그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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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유계자/바닥의 그늘 외 1편
바닥의 그늘 외 1편
유계자
봄볕에 눈이 찔린
광어 도다리가 수족관 바닥에 바짝 붙어있다
팔짱 끼고 지그시 한 눈씩 바라본다
시계시침이 팔을 벌리자 등 떠밀려
동병상련을 앓는 시간 속으로 감나무 그늘이 밀고 들어왔다
저만치서 자박자박 밀물 소리가 들리자
엎드린 도다리 귀가 번쩍 뜨인다
지느러미를 흔들어 동족을 깨운다
돌아갈 고향
그 넓은 바다로 노를 젓는 것인데
거친 손 하나가
번쩍, 뜰채로 허공으로 낚아채는 순간
바닥과 바다가
힘차게 파닥거렸다
바닥에 있는 것들은 함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설컹설컹 고향을 썰어버린다
다다르지 못할 먼 바다는
영영 잊으라는 듯
사람들이 비린내를 다스리며
잘근잘근 씹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물그림자를 흔들 때
처마 끝이 빗방울을 거두고
연못이 노을에 물들어갈 때
연꽃이 피고 있었다
바람이 물그림자를 흔들 때
그녀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급류가 일었다
새살림 차린 남자의 대문에서 밀려나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찾을 수 없다고
한 차례 소나기가 휩쓸고
연잎에 투명한 둥지 하나 생겼다
하늘이며 구름이며 미루나무로 세간을 들여
잠시 살다가는 세상
한번 행복해보라는 듯 빈방이 반짝인다
바람이 툭 치고 들어와
아찔한 비행에
그녀의 물컹한 둥지가 풀어져 버렸다
딸의 이름만 달싹이다 떠났다는 그녀의 어머니
어디쯤에서 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까
잠자리 한 마리가 빙빙 물의 둥지를 찾고 있다
*유계자 2016년 《애지》로 등단. 웅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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