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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유재복/봄의 자객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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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34회 작성일 19-07-1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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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유재복/봄의 자객 외 1편


봄의 자객 외 1편


유재복



꽃나무 두리번거리며 뛰어가다가
반환점 돌아 나오는 선두 그룹을 마주친 것처럼
발목이 풀리고, 봄비에
푹푹 발이 빠지기 시작했다
먼 하늘 보는 게 눈부셔
자꾸 시선이 발밑으로 떨어지고
허벅지 무거워지고 급기야
영차영차 가지 끝을 따라서
동그란 새잎을 꺼내 드는 가지 사이에
실수로 하품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자꾸 미끄러지는 황토 비탈 아래에
묵어 오래 고인 붉은 피 흥건하게 쏟아놓고
한 해쯤 이 자리에 박혀
푸른 잎 한 그루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망설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봄밤 꽃그늘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선 것이 화근이었다
휘파람 소리 들린 듯해서 돌아봤을 때
후드득 꽃잎 몇 장과
잔인한 꽃향기 한주먹 얼굴에 던지며
비껴가는 바람 뒤에서
스-벅 스쳐 간 그림자에
아차, 뒤춤 어디를 찔린 것 같은데……


봄이 자객을 보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발목



사냥개가 물고 있는
이백 근 숫멧돼지
버둥거리는 뒷다리 발목에
이장님은 칼을 그었단다
출구는 그걸로 막혔다
일어서지 못하면 달아날 길이 없다


죽은 새의 발가락은
나뭇가지를 쥔 모양으로
오그라져 있다
쥐고 있으면 날 수도 없다


잡은 짐승의 털을 벗기면
발목부터 잘라낸다
삶의 흔적도 죽음이 나갈 다른 길도 지워진다


흔들림이 심할수록 발목은
더 굵고 곧다
발바닥이 주름을 펴며 기지개를 하는 밤에도
두근두근 발목은
출발선에 선 아이의 양 주먹처럼
복숭아뼈를 꼭 쥐고 있다





*유재복 2017년 시집 『한밤의 진동』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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