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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산문/박영녀/백령도, 가을 막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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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02회 작성일 19-07-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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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산문/박영녀/백령도, 가을 막바지다


백령도, 가을 막바지다


박영녀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셋이 백령도 냉면 투어를 한다. 그들은 몇 번을 옮겨 다니며 냉면을 먹는다. 씨름선수 같은 남자가 젓가락질 서너 번 했을 뿐인데 냉면 그릇이 얼굴을 가렸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8년 전에 나도 저기서 별맛 없는 냉면을 먹었다.


여행 전날 잠을 설치는 건 당연지사다. 무거운 눈꺼풀을 매단 채 1박 2일의 백령도행 배를 탔다. 올해의 마지막 여행지인 만큼 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리라 믿었다. 관광객보다 휴가 복귀하는 군인들로 북적거렸다. 백령도에 꼭 가보고 싶었지만 군사 지역이라 선뜻 나서지 못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잠깐 그를 생각했다. 스물다섯의 어느 날 달달한 목소리의 그가 전화선 너머로 들려주던 파도 소리가 전부였던 백령도를 내가 가고 있다. 인천 연안 부두에서 4시간 넘게 걸려 늦가을의 섬인 백령도 용기포선착장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 해병대 전역하는 전우들의 송별식으로 인하여 군악대의 멋진 연주에 맞추어 환영 아닌 환영을 받으며 손뼉을 쳐주고 환호를 해주었다. 한마디 건넨다.
“고생했어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검게 그을린 장병들 얼굴에 환하게 웃고 있는 치아가 유난히 하얗다. 연신 웃으며 고개를 꾸벅이며 서로 보고 웃었다. 그들의 웃음처럼 가벼운 움직임으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 차를 타고 간 곳은 말로만 듣던 사곶 해안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의 적막감이란,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 견고한 生


                        ―박정대 「사곶해안」 일부
 
이곳에 첫발을 디딜 때의 느낌이 이보다 더한 표현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물이 빠져나가고 단단하게 다져진 백사장은 밟지 않는 숫눈 같았다. 발자국을 남기려고 발 도장을 찍기도 하고 뛰기도 해보고 가만가만 걷기도 했다.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귀퉁이가 부서진 낡은 빈 배 한 척이 쓸쓸함, 이란 걸 알았다. 옆에 가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모래를 만져보니 부드럽다. 만지면 사라질 것 같은 모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누군가 말했다.
“쿵, 소리 들었어? 북한에서 연평도에 포탄을 떨어뜨렸대.”
사곶 백사장의 아름다움도 잠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북한에서 연평도에 포 공격을 했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들 생각으로 멍해졌다. 붉어진 눈시울 너머로 연병장을 향해 도망치듯 가버린 아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아들은 입대 한지 일주일 된 훈련병이다.
그곳은 괜찮을까? 괜찮겠지? 아무 일 없을 거야…… 통 먹먹한 마음뿐이었다.
연평도와 교전 중이란다. 전쟁이다.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핸드폰과 문자의 빈번함은 그때의 불안함을 더 극심하게 만들었다.
“언니 북한이 백령도에 포문을 열어놨대, 안 나오고 뭐 해.”
“엄마 안 오고 뭐 해.”
군대 간 손자보다도 백령도에 있는 나를 걱정하던 시어머니까지, 일순간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내 귀에 들리는 모든 문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이곳에 포탄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그러나 배는 운항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십이월이 보이는 저녁은 빨리 어두워졌다. 한산한 거리는 음산할 만큼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을씨년스러운 풍경 안에 머물러있었다. 서울 변두리 풍경을 연상시키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살아 있어서 행복해할 수 있다는 그 무엇 때문에 밥이 사치다 할 정도의 저녁이었는데, 티비는 밤새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속보가 반복되어 떠들고 있었다. 뜨거운 방바닥이 연평도 주민에게는 죄송할 만큼 불면의 밤을 이리저리 뒤척거렸고, 바람 소리에 밤새 문도 덜컹거렸다. 창문을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늦가을 소리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니 꼬옥 감은 두 눈이 들끓는다. 뜨거운 방에서 빈속에 느꼈던 새벽 한기 밀려온다.
백령도의 조용한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배가 출항한다고 하여 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예정대로 간다고 안심을 시켰다. 한두 명의 주민들도 보이기 시작했고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과 마음이 헛헛한 여행자의 발목을 잡은 것은 황해도식의 메밀 냉면이다. 점심으로 백령도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반냉을 먹기로 했다. 반냉은 비빔냉면에 육수를 부은 냉면이다. 군인들과 원주민이 추천하는 곳이었다. 백령도에 사는 대부분 주민이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난 온 분들이다. 황해도식 냉면이라고 하는데 몇몇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다. 아들이 좋아하던 물냉면을 생각하니 목이 멘다. 목구멍이 넘길 생각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별맛을 모르겠다. 허름한 식당엔 불안한 긴장감이 돌았고 적막으로 가득 채워졌다.
전혀 생각지 못한 연평도의 폭격에 놀라 두려움에 떨며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콩돌해안과 두무진 가는 곳곳에 숨어있는 자연 자체의 가없는 풍광은 잠깐이지만 불안을 마비시켰다. 돌아오는 비좁은 배 안에서 아직도 꿈속에서 들리는 듯 연평도의 속보를 전하는 격양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영원히 잊지 못할 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백령도의 늦가을 전설로 기록될 것이다.
 
요즘 큰 쟁점이 되는 평양냉면은 열 번 먹어봐야 제맛을 안다고 한다. 한 번을 먹어서 그런지 통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백령도 냉면 생각이 났다. 백령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줄 서서 먹는다는 백령도 냉면을 먹으러 갔다. 줄 서지 않으려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갔는데 ‘break time'에 걸렸다. 돌아서는 발걸음으로 혼잣말을 한다. “별맛 없을 거야” 그날처럼.





*박영녀 2015년 《시에》로 등단. 부천여성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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