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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시노래 마을/정무현/편지―정치산 시/나유성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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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시노래 마을/정무현/편지―정치산 시/나유성 작곡
편지
―정치산 시/나유성 작곡
정무현
이제는 고전적인 단어가 된 느낌이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편지가 아니라면 직접 찾아가거나 공중전화가 유일한 연결수단이었다. 그러나 전화 자체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고 공중전화로 젊은이들이 연결되기는 참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 전화가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가 백색전화와 청색전화의 구별도 있었으니 전화가 재산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니 전화가 있는 집이라면 중산층 이상이었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전화를 한다는 것은 더욱더 힘든 상황이었고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전화 자체를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개인별 전화가 있는 시대에 사는 청소년들은 예전에는 어떻게 서로 만나고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예전에도 사랑은 있었고 사랑은 뜨거웠고 사랑을 위해 어떻게든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일단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단체로이든 몇몇이든 모이는 기회가 있으며 여기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쪽지를 건네게 된다. 물론 쪽지 내용에는 시간이 있으면 며칫날 어디에 몇 시까지 나와달라는 내용이 전부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완전히 일방적이다. 그러나 일방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상대로서도 싫으면 나가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인연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끊어질 수가 있고 일방적으로 연결이 될 수가 있다. 연결이 되어서도 만남이 그리 쉬운 건 아니었다.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상대방과의 구두 약속으로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약속을 잊어버렸거나 다른 일 때문에 피치 못하게 나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이상 안 나오는 이유를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만남의 열정이 크다면 그것 또한 큰 장애가 되지를 않았다. 함께 만났던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하여 상대방을 알아내는 방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가 잘 다니는 곳이라든가 몇 번 버스를 탄다든가 집이 어디 근처에 있다던가를 알아내어 몸으로 때워가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지속하려고 했다. 만남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상대의 집주소와 학교, 자주 가는 곳 등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때부터는 인연이 되든지 웬수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로 남게 된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인연을 만듦에 있어 많은 인내를 필요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행동은 보통 그 당시의 또래로서는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조그마한 특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랑드롱을 좋아하고 찰스 브론슨을 좋아하고 오드리 햅번, 마릴린 먼로를 좋아하고 존 드라이든의 말 중에서도 ‘용기가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것이다. 그것도 못하는 또래는 연애를 포기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다리에 다리를 놓아가며 용기 있는 녀석에게 부탁하여 만날 날을 만들고 함께 나가 상대에게 쪽지를 건네거나 그도 못하면 녀석에게 대신 마음을 전달하게 하였다. 다행히 상대에게 호감을 얻게 되면 본격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수줍은 사람들은 대체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남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부터 상대에게 그리운 마음을 줄줄이 담아 편지를 전하게 된다. 그 편지는 차라리 당시로서는 인생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수시로 편지함을 열어보고 실망과 실망을 거듭하며 답장 없는 상대의 마음을 받아보려고 가슴에 큰 구멍을 느끼며 잊어보려고 노력한다. 도저히 잊지 못할 때에는 딱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애걸한다. 그리고 기약 없이 자신이 정한 장소로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나간다. 당시에는 상대도 마음이 순수하였다. 너무 안됐다 싶으면 마지막 딱 한 번만 보자는 말에 나가는 미덕도 있었다. 물론 시간보다 2~3시간은 늦게 나간다. 상대가 없을 거라는 예견으로 지정된 장소로 가보면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정말로 마지막이 된다. 서로가 꼭 성공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는 길은 천지가 울렁이고 눈물이 자꾸 쏟아지지만 상대에게만은 씩씩하게 헤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 때면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When a man loves woman이 더욱 절절히 가슴을 후벼 파고 Rythem of the rain이 나를 위하여 만들어진 노래같이 쏟아지는 눈물을 만든다. 어니온스의 ‘편지’라는 노래는 당시의 모습을 잘 그려내 젊은이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렇게 청년은 아파하고 좌절을 맛보며 한 단계 더욱 성장된 모습으로 커가는 것이었다. 지금의 장년층 이상은 이렇게 소설 같은 여유와 시 같은 서정으로 성숙하여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가정과 지역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해외펜팔이라는 것을 하여본 기억이 아직도 아련하다. 한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쥬디스 해드웨이라는 활달한 금발의 아가씨였고 한 번은 일본 아가씨였다. 일본 아가씨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전을 뒤져가면서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쁨과 서로의 감정이 영어로서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LA 아가씨는 당시에 유명한 록페스티벌 ‘우드스탁’이라는 축제를 소개하는 책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부모가 너무 엄격하여 펜팔을 하지 못하게 경고를 하였고 이를 듣지 않는 나에게 편지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 답장이 없어 다시 편지를 보내었지만 그 이후 편지를 볼 수가 없었다. 이로서 나의 청소년은 불우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부모들이 그러했으리라. 특히나 음악을 하겠다고 기타를 매고 돌아다니는 꼴도 보지를 못했다. 그리고서는 당시에 수북하게 써놓은 작곡노트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인간의 미래가 그렇게 해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또다시 ‘시노래’ 라는 글을 쓰고 있다.
방향이 한참이나 틀어졌으니 다시 편지로 돌아오고자 한다. 편지의 위대함은 한나라 말년에 무제는 흉노족과의 싸움에서 패한 李陵(리링)을 변호한 司馬遷(스마치엔)에게 사형을 내렸다. 한나라 법률에 따르면 죽을죄를 면하는 방법은 구리 50만 냥을 국고에 납입하거나 궁형을 당하는 것이었다. 궁형이란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로 당시에는 죽음보다 더 가혹하였다. 그러나 스마치엔이 궁형을 선택한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유언을 받아(이 집안은 대대로 사관이었다.)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저 유명한 『사기』가 15년에 걸쳐서 탄생한 배경이다. 이러한 진실을 알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스마치엔이 任安(런안)에게 쓴 편지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16세기 퐁테뉴의 『수상록』에서는 로마에서는 한 집안의 주인이 극장을 갈 때도 비둘기를 품에 넣어갔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비둘기에 편지를 묶어 날려 보내기 위해서였고 그 비둘기는 답장을 받아오도록 훈련되었다고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편지를 쓴 사람으로 유명하다. 『레미제라블』의 판매상황을 알고 싶어 편지에 ‘?’만을 적어 보냈고 출판사에서는 ‘!’라고 대답하였다.
동서양의 편지에 읽힌 일화는 이외에도 엄청날 것이다. 아직도 국군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풍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편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편지는 말보다도 어쩌면 더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초 단위로 세상이 연결되는 가운데에서도 북한과 미국은 편지라는 고전방식으로 서로를 탐색해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름다운 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편지의 무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편지는 이처럼 남녀 간의 가교만이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오늘 소개할 시노래는 정치산 시인이 작시한 ‘편지’이다. 먼저 가사를 한 번 음미해 보자.
힘겨운 당신에게/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요//가슴속 태우던 불꽃/꾹꾹 눌러 담은 화로 같은 언어로//따사로운 눈빛으로/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요//당신을 바라보면/스치는 세월에 붉어지는 눈시울//감추기 싫어요/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요.
짧은 가사이지만 사랑의 마음을 절제하며 상대에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은 수다스럽지도 않고 욕정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수줍은 모습으로 내 속에 있는 뜨거운 열정을 누르고 누르며 눈빛으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불덩어리 가슴을 편지로만 겨우 표현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마저 편지를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정치산 시인은 그 불덩이를 어떻게 꾹꾹 눌러 버틸 수 있었을까요. 그러면서 가장 밀도가 높은 화로 속의 속불을 순수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 대목에서 작곡가 나유성은 가장 감정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던지듯이 멜로디를 끌어가다 다시 챙겨서 오는 모습으로 마디를 정리합니다. 그 다음 전개에는 다시 감정을 일으키며 잔잔하게 연민의 느낌을 끌어갑니다. ‘따사로운 눈빛으로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요.’ 이렇게 끌어간 멜로디는 다시 한 번 애틋한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상황을 느낌 그대로 그려냅니다. 전체적으로 슬로우 곡이면서 늘어질 수 있는 느낌을 3잇단 음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결코 처량하지 않게 긴박하게 만들며 멜로디의 순차적 진행을 가져가다 울림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반전의 멜로디를 가져온 아름다운 곡입니다. 필시 작곡가에게도 애잔한 사랑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곡은 길지도 않으며 가사도 단순하면서 절제된 언어로 표현이 되어 시노래를 떠나서도 누구나가 즐겨 부를 수 있는 애창곡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번 공연(제15회 시노래콘서트)에서는 조아진 가수가 특유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더욱 잘 표현해 낸 것 같습니다. 정치산 시인이 쓰고자 한 편지가 사랑하는 낭군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젊은 시절 너무도 멋진 이웃 총각에게 반하여 그 총각이 아직도 내 곁에 머물며 나를 애잔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때 더욱 시와 노래가 달려오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무현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사이에 새가들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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