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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산문/김혜식/다시, 쿠바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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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산문/김혜식/다시, 쿠바로 갔다
다시, 쿠바로 갔다
김혜식
다시 쿠바를 다녀왔다. 7년 전에 푸른길 출판사에서 『쿠, 바로 간다』라는 책을 낸지 7년만이다. 다녀오니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왜 갔던 곳을 또 갔느냐였다. 하긴 쿠바보다 더 가보고 싶은 나라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긴 하다. 언젠가 여행 중에 나의 여행파트너인 동생과 8시간의 트랜스퍼하는 동안에 지루한 나머지 가보아야 할 나라에 대한 목록을 작성해본 적이 있었다. 부지런히 다녀도 이제 내 나이로는 갈 수 없는 이유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지라서, 고산지대라서, 너무 멀어서, 등등의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쿠바를 택한 것에 대해 굳이 답을 하라면 ‘글쎄’이다. 그래도 답을 찾으라면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매력보다 다녀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 만만치 않게 자라고 있었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다음 질문으로 ‘2편으로 『쿠,바로 간다』 나오느냐’이다. 또 내가 사진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진은 많이 찍었느냐’이다. 그러나 둘 다 아니다. 이미 출판의 욕심이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삭아지고 있었다. 다시 보고 싶던 쿠바에 대해 온전하게 감동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봤자 그저 지나간 그리움에 또 하나 그리움을 얹었을 뿐이겠지만 말이다. 어찌해도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그리움이란 덜어지는 게 아니란 걸 뻔히 알면서한 짓이 맞다.
이번 여행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영화 평론가 오동진 선생님팀과 다큐영화 하나 만들어보자는 재미있는 발상이 동기였다. 일정은 열흘 남짓 걸렸다. 오가는 시간 빼면 그 일정에 쿠바를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정이긴 하다. 애초부터 쿠바를 반 만 보기로 작정하고 떠나야 하는 여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쿠바는 우리 남한보다 조금 큰 나라이지만 악어처럼 긴 나라로 한없이 내려가야 끝을 만날 수 있으며 악어의 꼬리 끝에서 미군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있는 관타나모를 비롯해 중요한 역사의 땅을 만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감자를 계속 석방오고 있’는 관타나모가 많이 궁금했기에 그 지역을 무척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산티에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라는 쿠바음악과 혁명의 중요한 도시가 그곳에 있다. 그곳엔 쿠바의 정신이라 불리는 호세 마르티나 피델 카스트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였던 콤파이 세군도가 묻혀있는 국립묘지인 씨미트리도 있었다. 그래도 간 김에 딜레이해서라도 산타아고 데 쿠바까지 다녀왔어야 했는데 내내 후회가 남았다. 산티에고 데 쿠바까지 항공노선이 있다니 꼭 다시 가봐야 할 곳이다.
이번 여행은 마음이 당기는 대로 다녔다. 순간의 끌림에 의해 떠났던 것처럼, 끌리는 대로 보고 끌리는 곳을 찾아 다녔다. 끌리는 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여행의 더 큰 즐거움이었다. 목적없이 다녔으니 사진은 뒷전이었고 다큐에 쓸 사진 좀 달라하면 글쎄 줄게 있을라나 모르겠다.
여행의 일정은 9박 11일이었다. 총 19명으로 7월 12일에 출발해서 7월 22일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쿠바의 최고 폭염의 회오리 속으로 들어간 것만큼이나 더웠다. 모두 지쳐갔으므로 다큐를 찍거나 기획과정을 토론하기에는 모임 자체가 번번이 틀어지고 엉키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인연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합류 했으므로 이래저래 열악한 환경이 가중되었다. 우선 숙박 자체가 한곳에 머무르는 시스템을 갖지 못했다. 많은 인원이었으므로 4-5군데의 까사Casa Particular 라고 불리는 숙박업소에 각기 흩어져 잠을 자야 했다. 까사는 민박집의 일종으로 일반의 개인집을 숙박업소로 수리하여 국가의 허가 아래 운영하고 있는 에어비앤비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다행히 열악하지는 않다. 오히려 재수만 좋으면 대 저택을 개조하여 만든 호화 숙소를 만날 수도 있기에 판에 박히지 않는 개성있게 꾸민 집들의 까사 순례를 하여도 여행이 될 만큼 매력인 숙박을 하였다.
또한 일행들의 목적 또한 달랐다. 어떤 이는 다큐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이는 평생 체게바라가 있는 동경의 땅이어서, 어떤 이는 통장에 딱 그만큼의 돈이 남아서 합류 하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다시는 못 올 것만 같아’서와 같은 여행지를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맞아야 하는 조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개인 여행이 아닌 다음에야 돈을 들고 기다려도 쿠바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라는 특별한 체제의 나라이므로 두려움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어 있다. 반면에 동경 또한 갖게 되는 곳이다. 모두 다른 목적을 갖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유명한 감독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감독이 서넛, 제작자도 둘셋, 사진을 하는 사람,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등, 단순히 관광을 택해서 온 사람들까지 20대에서 60대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였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 대로 관광을 하거나 목적을 수행하였다.
15년 전에 청춘의 시작 즈음, 얼결에 쿠바까지 와서 가져온 일곱 벌의 옷으로 한 달을 버티며 숙식과 바꿔 먹었다는 성시흡 감독의 옛 추억 찾기처럼, 나도 7년 전의 추억찾기 놀이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픽 제작소의 사진작가를 만나 팔에 묶었던 스카프를 선물로 주었던 친구를 다시 만났다. 옛 얘기를 나누거나 내 여행기를 전달해 주는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각자 즐기는 여행이 한 편의 영화가 되리라 믿는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나 여행은 나 혼자 봐도 아깝지 않은 눈물나는 대박의 영화이다. 적어도 각자에게는 그럴 것이라 생각되었다.
다큐에 대한 시나리오는 오동진 평론가가 구성을 할 것이다. 티격태격하며 쿠바를 즐기는 20대 초반의 예쁜 친구들이 함께 했으니 풋풋하게 바라본 쿠바의 실상을 솔직하고 신선하게 줄기 잡아 나갈 수도 있고, 지금까지 갇혀있는 사회주의가 열리는 정치 사회의 혼돈의 풍경을 살만큼 살아온 노땅들의 시각으로 분석하며 영화를 입혀 줄기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전문가이니 그들이 할 일이었다.
그래도 관광지는 안 돌아 볼 수는 없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Havana에 들어서면 올드아바나, 센트로아바나, 베다도 지역을 돌면서 우선 체게바라의 흔적이나 혁명 광장, 호세 마르티 기념관 등을 구석구석 보아야 한다. 카피톨리오, 비에하 광장, 오비스포 거리, 산 프란시스코 광장, 아르마스 광장 모로성, 등등도 돌아보아야 한다.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핑카 비히아Finca Vigia & 코히마르Cojimar, 헤밍웨이가 묵거나 모히또나 다이끼리를 마셨다는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 라 보데기타La Bodeguita, 암보스 문도스호텔 등도 큰 재미를 선사 할 것이다. 말레콘 바닷가도 있다. 이곳에서 쿠바사람들은 밤이면 모두 몰려나와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밤을 지샌다. 물론 더위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삼삼오오로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아직까지는 인터넷의 노예로 살지 않고 밤새워 바다를 즐기고 이웃을 즐긴다.
인터넷으로 일상이 된 우리는 인터넷이 안 터지면 불안증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구석구석 와이파이죤만 잘 골라 다니면 인터넷이 가능한, 아니 폭발적으로 열광하기 시작한 쿠바 젊은이들과 쿠바노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한다. 그들의 폐쇄되어있던 특별한 사회주의 풍경은 더 이상 낭만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느 것이 더 살기 좋은 나라인지 쿠바사람들은 모르는 일이므로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은 여행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뉴스에서는 쿠바가 사유재산을 인정했다는 소식과 동성동본 결혼을 허용하겠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렇게 쿠바는 바람 끝에 앉아 있다고 해야했다.
그리고 내려가며 시엔프 에고스Cienfuegos, 온통 도시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인 트리니다드Trinidad, 체게바라가 묻혀있고 기념관이 있는 산타클라라Santa Clara와 휴양지인 바라데로Varadero, 위로는 비냘레스 같은 관광지를 돌았다.(우리가 돌아보았던 코스이다) 그러나 나는 위쪽의 비냘레스를 포기하고 올드아바나를 돌았다. 오기 전부터 보고 싶어 하던 책 속의 주인공들을 찾아다녔다. 그때 나는 사진가의 작업실에 들려 그가 쓰던 사진확대기 ‘더스트 805’가 내가 쓰는 확대기와 같다는 이유로 동지를 만난 듯 얼싸안고 그의 작품 하나를 샀던 추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기억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만나니 추억은 소환되었다. 아쉽게도 7년 전 우리가 묶었던 까사 앞의 설탕집 아줌마 친구 (쿠,바로 간다 표지로 쓴) 와 한인 3세 할아버지는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아바나는 내게 추억 찾기였으나 그 대신 그때 보고 싶었던 쿠바관의 쿠바미술과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FAC복합 문화 공간 Fábrica de Arte Cubano에서의 쿠바 사진전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정보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인터넷만 열면 숱한 정보가 넘쳐 난다. 또한 좀 더 구체적인 쿠바관광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쿠바를 사랑하고 살사춤에 빠진 김춘애 작가의 『홀리데이 인 쿠바』 한 권만 가방에 놓으면 잠자고 먹고, 즐길 거리의 쿠바로는 만사 오케이이다. 아직 우리와는 수교를 맺지 않은 쿠바이지만 1년이면 우리나라에서 1만 명 가까이가 쿠바를 찾는다고 하니 필독서가 되겠다. 그러니 여기서는 쿠바에 대한 정보는 생략하겠다.
우리나라 교민도 30명 정도는 있고 식당이나 까사를 운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수교도 되지 않은 나라에서 어떤 형태의 연결고리를 이용하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안 되는 것은 없다. 검은 경제를 눈감아 주고 암시장과 뇌물 탈세 같은 것들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틈새에는 누구나 살게 마련이다. 어느 나라이나 어두운 면은 있게 마련, 그런 것까지 모두 안다고 해서 쿠바를 안다고 하면 오산이 될 것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이 느끼고 싶은가 사전에 알고 가면 다 많은 쿠바를 보게 될 것이다. 참고로 나는 쿠바의 미술과 사진 그리고 음악에 아주 많은 매력을 가졌으므로 전시관이나, 브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이브라힘의 흔적 찾기와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목록에 넣었으며 꼬히마르와 이브라힘이 묻혀있는, 아바나에서 15분 거리의 콜론 시미트리를 찾아가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들은 지금 삼성이나 엘지전자 제품을 소유하기를 희망하는 것만큼이나 K-POP에도 열광하기 시작했다. 수교하지 않았으나 이미 문은 열렸다고 본다. 문화는 서로 그렇게 젖어가면서 만나면 서로 끌어안게 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김혜식 12번의 개인전과 사진집 『공산성』과 여행기 『쿠바로 간다』 등 아홉 권의 수필집과 사진집을 내다. 현재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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