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2호/기획탐방/우현자/차이나타운을 먹으러 가다
페이지 정보

본문
22호/기획탐방/우현자/차이나타운을 먹으러 가다
차이나타운을 먹으러 가다
우현자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그저 일상의 시간을 잠시 접어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오면 좋을 듯한 계절의 시작이다. 그곳은 멀든 가깝든 어디든 좋을 듯하고 누구와도 좋을 듯하다. 가을의 여행길은 충분히 그러한 날들이다. 그래서 함께 시를 쓰는 이들과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일상을 탈출해 보기로 했다. 좋은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누게 되는 수다는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점점 현대인들에게 있어 음식은 이제 식食을 떠나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살기위해 먹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현 시대에 맞게끔 간편하게, 맛있게, 즐겁게, 건강하게 맛으로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 여행을 하는가 하면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즐기기 위해 직접 그 나라로 떠나보기도 한다.
또 여러 방송매체들은 음식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유혹하기도 한다. 여러 지역의 다양한 음식을 다양한 사연들과 소개해주기도 하고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공동의 만남들을 가지기도 한다. 이렇듯 음식의 문화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며 각기 다른 여러 계층형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먹었던 음식은 이제 사회적의미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풍성한 먹거리와 구경할 수 있는 볼거리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인천 근교에 계신 분들은 인천역(차이나타운)이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루정도로 돌아보면 좋을 거리이다. 우리도 차를 세워 놓고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인천역에서 내려 자유공원 쪽으로 가다보면 바로 중국식 대문인 패루가 보인다.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에는 패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붉은 기둥위에 지붕을 얹은 중국식 전통 대문으로 기념할 일이 있거나 마을의 입구라는 의미로 동네 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도 중화가, 인화문, 선린문, 한중문으로 네 개의 패루가 세워져있는데 그 패루를 들어서면 온통 붉은색의 간판들과 홍등으로 인해 중국의 거리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 차이나타운은 약 130년 전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인들과 함께 건너온 40여명의 군역 상인들이 정착을 하면서 역사가 시작 된 곳이라고 한다. 이들은 조선인들과도 무역을 하면서 중국 조계지와 청국 영사관을 세웠다. 조계지란 정부와 조약·협정을 맺어 자치적인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국인 거주 지역을 뜻한다.
그 이후 조계지를 중심으로 중국의 건축방식을 본뜬 건물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40여명의 상인들은 크게 1천명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지금의 차이나타운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화교는 인천을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 삼고 중국에서 수입한 식료 잡화를 팔며 그 당시에 최고의 성업을 이루게 되었다.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1884년 35척의 청조 선박이 인천과 마포항을 왕래하면서 1만 3천 톤의 화물을 운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 상륙 작전으로 건물들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21세기에 지구촌의 세계화 바람에 힘입어 차이나타운은 역사성과 문화성이 재조명되게 되었다. 그렇게 이 지역은 인천의 새로운 문화와 관광 명소로 부상함에 따라 재도약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특히 짜장면 박물관 조성, 삼국지 벽화거리, 먹거리 타운 등 차이나타운 내 주요 거리 통행 제한, 거리 예술제 실시와 중국어 마을 조성, 기반시설 공사 등으로 이곳 인천 차이나타운은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점차 다시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또 좋은 건 5개관 통합 관람권을 구매하면 짜장면 박물관, 한중문화관, 근대건축전시관, 개항박물관, 중구 생활사 전시관등 5개관을 돌며 다양한 중국 문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중국으로 직접 떠나지 않고도 어른부터 어린 아이까지 다양한 중국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중국 음식에 다양한 먹거리까지 하루 동안 여행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우리는 먼저 100여 년 전에 짜장면을 처음 개발해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공화춘’으로 가서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차이나 타운하면 공화춘을 빼놓을 수가 없고 공화춘은 중국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외관은 벽돌로 이루어져 서구식 건축양식 같지만 내부는 중국 전통문향이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공화춘은 중국 산둥지방 출신인 우희광 선생이 22살 젊은 나이에 ‘산동회관’이라는 상호로 첫 영업을 시작했는데 1911년 1월 청나라가 중화민국으로 바뀌며 ‘공화춘’으로 명칭을 바꿨다. '신해혁명 후 ‘공화국 원년의 봄’을 맞는다는 이유로 문을 연 중국음식점으로 ‘모두 봄날에 꽃 핀 듯이 잘 살아보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 공화춘이 있던 건물은 지금의 건물이 아닌 폐허처럼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었는데, 근대문화재로 등록되고 나서 짜장면박물관으로 재탄생하였다.
우리는 먼저 짜장면 박물관을 들려보기로 했다. 이왕 먹는 거 짜장면을 알고 먹는 다면 왠지 더 맛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자장면이 표준어로 사용했지만 최근 국어국립연구원이 표기법상 ’자장면‘도 맞고 ’짜장면‘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것에 상관없이 ’짜장면‘이란 낱말을 통해 ’짜장면‘의 맛과 추억을 간직해 온 관계로 나도 짜장면으로 표기하겠다.
짜장면 박물관은 1883년 개항이후 인천 화교의 역사를 통해 짜장면의 탄생과 변천의 역사적 배경을 볼 수가 있었고 또 인천 화교사회를 엿 볼 수 있는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짜장면의 탄생에 대해서 적어놓은 것이 있어 잠깐 요약해 본다.
6.25전쟁 때, 인천에는 어시장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 되고, 전쟁으로 인해 한국 사람들에게 까지 요리를 판매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중국 북경, 천진지방에서 춘장에 면을 말아먹는 요리가 짜장면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돼지고기, 양파, 생강 같은 양념을 듬뿍 넣고, 춘장을 묽게 해서 만든 것이 지금의 짜장면이 되었다고 한다. 공화춘의 짜장면이 원조가 된 것이 이런 이유이다. 짜장면은 만드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 공화춘 짜장은 간짜장처럼 양념이 따로 나오는데, 고추가 썰어 올려져있는 게 특징이다.
짜장면이 외식문화의 대표적인 음식이 된 계기는 ’사자표 춘장‘의 등장과 함께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을 위해 중국 춘장에 설탕을 가열하여 만든 끈끈한 갈색의 물질인 캐러멜을 혼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6,25전쟁 이후 쏟아져 나온 값싼 미국 원조의 밀가루와 이 소스의 만남으로 ’짜장면‘은 더욱 대중화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짜장면이 맛이 달다면 중국의 짜장면은 짠맛이 강하다.
짜장면 가격은 1960년대 초 쌀값이 3010원(80kg 한 가마니)할 때 15원 하던 짜장면 가격이 1970년대 140원, 1980년대 350원이었다가 2000년대 경제 위기를 전후해 3000원(쌀 한가마니 20만원)까지 치솟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짜장면 한 그릇은 4000원~4500원으로 50년 동안 450배가 오른 격이 된다. 이제 짜장면 한 그릇 의 가격 변화가 서민들의 외식 문화에 영향을 끼칠 만큼 대중적인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철가방의 역사이야기도 있어 적어본다. 광복 후 짜장면 짬뽕으로 대변되는 중국음식은 신속 배달이라는 구호 아래 급속히 대중화 되었는데, 이에 따라 음식 배달을 위한 ‘철가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나무로 된 가방을 만들었지만 너무 무거운 데다가 넘친 음식물이 나무에 스며들어 생기는 위생 문제 때문에 오래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 뒤 플라스틱 철가방도 만들었으나 금형 비용이 비싸 일반화되지 못하다가, 알루미늄 판과 함석판 같은 싼 재료가 등장함에 따라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참고로 철가방은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선정한 한국인의 일상을 대표하는 생활 속 디자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면 차이나타운을 둘러보기 전에 중국 문화를 볼 수 있는<한중문화관>을 먼저 가기를 권해본다. 정식 명칭은 <한중문화관 인천화교 역사관>이다. 한중문화관은 층별로 중국 문화를 전시해 놓았는데 1층을 구경한 다음 3층으로 먼저 올라가서 체험하고 2층으로 내려 오는 게 좋은 관람순서라고 한다.
3층에는 중국 전통의상인 청나라 때부터 입었다는 치파오를 입어 볼 수 있는 체험 장이 있다. 치파오는 치마를 입고도 말을 탈 수 있게 만들어진 옷으로 처음에는 지배층들이 입기 시작했는데 한족들이 결혼식 의상으로 입기 시작하면서 전통 의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고유 의상을 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어서 한번 쯤 중국 의상을 입고 중국 문화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길 거리가 될 수 있을 듯싶다.(참고로 의상체험은 미리 예약을 해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중국풍의 카페테리아가 준비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칠교놀이 체험도 할 수가 있다.
2층에는 중국 의식주 문화를 비롯하여 도자기 생활 공예품까지 한 자리에 전시되어 있고 또 중국의 소수민족을 전시해 놓은 곳에는 그 민족의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들도 가득했다. 중국의 유명배우인 이소룡, 주윤발등의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었다.
거기서 나와 <생활사전시관>으로 향했다. <생활사전시관>은 인천 중구가 출범한 1968년을 기준으로 1960~70년대 인천 중구와 관련된 생활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으로 지어져 이곳은 밖에서 보기에는 작아 보였는데 실제로 안에 전시된 생활사는 그 시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고 각 테마 공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시간공간을 이동한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지상 1층은 1960-1970년대의 생활사 즉 의식주 문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2층은 백항아리선술집, 극장, 다방과 같은 당시의 문화생활이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꼭 한번 찾아보기를 바란다. 또 인천 중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사진들도 있어 그 시절의 생활들을 엿볼 수가 있었다. 곧 운영 예정인 카페도 준비되고 있었다.
이렇게 차이나타운은 가볍게 하루로 떠나기 좋은 공간이다. 좋은 이들과 함께 음식을 마주하며 음식의 유래를 알아보기도 하고 또 그 음식이 왜 유명하게 되었나를 그 지역의 역사와 연관해서 배우며 그 지역만의 다른 문화를 만나 보는 것도 큰 여행이 된다.
오늘날은 누구든 쉽게 여행을 떠난다.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최소한의 비용만 마련된다면 갈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여행을 하게 될 때 대부분은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느라, 사진을 찍느라, 이국적인 풍경에 이방의 언어에 그저 시선을 빼앗긴 채 피곤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정확한 목적도 이유도 없이 다른 누군가가 수없이 다녀간 길을 똑같이 똑같은 음식을 고수하며 그렇게 가이드에게 맡긴 채 허둥지둥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이다. 그것은 결코 그저 몸이 왔다 갔다 하는 이동만의 여행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며, 자신과의 또 다른 만남의 시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그대가 일상을 떠나든 아니든 간에 그 모든 행위들은 여행 인 것이다. 장소의 이동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지금 생의 여행을 하고 있고, 해야 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풍 나온 아이 같은 떠남의 행복이 이루어져야한다. 오늘 하루도 그대만의 자리에서 그대만의 여행길을 떠나시기를,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유하시기를, 좋은 추억을 만드는 가을이기를, 그러한 어느 한 계절이기를.
1)5개관 통합관람권: 성인(19세 이상) 3,400원/청소년(13-18세) 2,300원/어린이(36개월-12세) 1,700원: 단체(20명이상)의 경우 할인 관람시간: 09: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2)짜장면 박물관: 이용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3) 한중문화원: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군인 500원/연중무휴이며 09:00-18:00 시까지
*우현자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 이전글23호/권두칼럼/장종권/흔들리다가 꽃처럼 그저 질 뿐이다 19.07.10
- 다음글22호/아라포럼/천선자/계층적 특징을 나타내는 고려가요 19.07.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