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3호/신작시/위상진/토르소는 언제부터 토르소인가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23호/신작시/위상진/토르소는 언제부터 토르소인가 외 1편
토르소는 언제부터 토르소인가 외 1편
위상진
헬스장에 불이 꺼지자
몸을 벗어 던진 트레이닝복은
모하비 사막을 달리고, 달리고
거대한 청소기 굉음 속에서
울쑥불쑥 인화되는 흰 뼈들
지구의 축으로 기울어진
어머니 발꿈치, 플루토에 흔들리고
월요일 제가 가요, 아버지께 들으셨죠. 어머니.
못 들었는데, 월요일 못 오신다고, 요.
별의 모서리에 부딪친 아버지
피자두색 관절 마디, 마디
병원은 토르소들을 배양하는 시험관 같았어요.
백색 다크서클 아래
토르소만 남은 박물관 조각
환지통을 쫒아가다, 그만 뛰어내리고 싶었을까요.
먼 철길을 문 채, 휘어버린 지평선
전생을 기억해낸 흰 새들이
머뭇거리며 꾸는 자각몽
말을 둘둘 접어 버리는 어머니
순서가 뒤섞인 채 졸고 있는
아가의 짧은 단, 어, 들
어머니, 저한테 왜 존댓말을 하세요.
사막을 날고 있는 아버지 눈동자
독수리 푸르른 그림자
어디쯤, 에서 매번 놓치고 있을까요
저는 아버지 반점 같은 은사시나무 껍질을
손톱으로 뜯어내고 있는데
3인칭 보다 낯선
우리는 잠식하지 않으려다 잠식당하고 말았지
페르소나
그에게서 나는 인지되는 것이어서
어느새 그의 말을 쓰고 있는
마침내 나의 말을 쓰고 있는
경계가 애매해져 버린 우리는
같은 말을 먹고 있었지
서로의 비밀을 훔쳐간
내 손에 있는 그의 편지
현재진행형으로 말을 걸어오고 있는
불타는 물속에서 수사를 늘어놓고 있어
늙어 버린 배우의 얼굴은 슬픈 일이어서
나는 색약의 물고기가 되고 싶어
정답보다 많은 질문에 잠식당한 채
뒷걸음치며 나아갔던 시간
빗물이 흘러내리는 유리창 너머
그의 울음은 그토록 검었고
접어둔 페이지 같은
나를 뚫고 가버린 그는
환영과 환각 사이,
롱테이크에 흔들려 버린 은닉된 터널
서로에게 투사投射하지 않으려다
익사해버린, 이상한 엔딩 같은
3인칭 보다 낯선*
*3인칭 보다 낯선: 영화 ‘천국보다 낯선’ 제목 패러디.
*위상진 1993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햇살로 실뜨기』, 『그믐달 마돈나』 외 다수. 푸른시학상, 시문학상 수상.
- 이전글23호/신작시/윤정구/히이잉, 권진규 외 1편 19.07.10
- 다음글23호/신작시/노두식/남루襤褸 외 1편 19.07.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