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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특집Ⅱ 설한 속의 시/김다솜/설원 속에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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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98회 작성일 19-07-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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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특집Ⅱ 설한 속의 시/김다솜/설원 속에 시詩


설원 속에 시詩


김다솜



내 당신이 그전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이병률 「눈사람여관」 부분 인용


  이병률의 시다.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시인의 애인은 눈사람이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헤어 질 수 있는 눈사람, 보고 싶지 않은 애인도 있겠지만 서로 만나지 못해 그립고 보고 싶은 애인도 많으리라. 가끔 데이트 폭력으로 사랑했던 애인을 사라지게 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눈사람처럼 바라보다 미련 없이 보낼 수는 없는지 안타깝다. 누군가 사랑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누군가 사랑하지 않는 것도 행복한 것 아닐까.
  겨울 하면 멀리는 북극이며 남극, 빙하, 얼음바다, 가까이는 눈사람, 고드름, 눈싸움, 썰매, 산타할아버지… 그리고 시로는 김수영의 「눈」이 먼저 생각난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꼬마눈사람, 눈사람 라라, 눈이 내리네, 눈사람여관 노래와 시들도 많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엺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인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부분 인용


  정지용의 유명한 시이자 명곡인 「향수」다. 수백 번 듣고 불러도 싫증나지 않는 향수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단골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펑펑 눈이 오는 밤, 어릴 적 질화로에 옹기종이 둘러앉아 고구마와 군밤 구워먹었고, 호롱불 앞에서 숙제를 하기도 했었다. 이제 한 줄 문장으로 남기는 추억일 뿐이다. 옛 시인들의 시가 있어 시인은 시를 쓴다. 천 년 만 년 남아서 귀를 눈을 즐겁게 해주는 시이자 노래가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어께가 각이 선다. 언젠가 옥천에 갔는데 간판마다 산뜻한 시 한 줄 또는 몇 줄 쓰인 것을 보았다. 시인은 돌아가신 뒤에도 마을을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 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의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중략-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네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를 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어떠리            


―양인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부분 인용


  양인자의 시보다 조용필의 노래로 더 유명한 시다. 아주 오래전 대구에서 조용필 콘서트를 딸과 함께 갔었다. 딸이 콘서트 행사장에 도착하더니 왜, 조용필이라고 하는지 알겠다며 놀라기도 했다. 빈틈없이 앉은 관객들을 보고 나도 놀랐다. 딸 덕분에 처음 콘서트 간 것이다. ‘오빠, 오빠’ 악수 한 번 못하고 사진 한 번 못 찍는 오빠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다행히 VIP석에 앉았는데, 오빠가 중앙 무대에서 내가 있는 무대 쪽으로 오기에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가다 넘어지기도 했었다. 시가 있고 노래가 있어 삶의 에너지는 스마트폰 충전하듯 한다. 그날 생각만 해도 세로토닌이 생성 되는 것 같다. 구름인지 눈인지 모를 킬리만자로 산 봉우리 그곳으로 노을이 넘어갈 때나 여명이 밝아올 때는 누구도 모방 못 하는 예술작품이다.


내가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열차에 뛰어 올랐을 때
내 옆자리 창가에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중략-
                                
얼마쯤 달렸을까 깜박 졸다 깨어보니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는 어디쯤에서 내린 걸까
털모자나 목도리 하나 남겨두지 않고


- 송찬호, 「눈사람」부분 인용


  송찬호의 시 「눈사람」이다. 살아가는 동안 옆자리이자 빈자리 앉았다가 또 다른 빈자리 찾아 옮겨 다니는 것처럼 그 눈사람도 무수히 빈자리를 향해 여행하고 있으리라. 그 눈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금빛이며 은빛, 붉고 파란 눈사람은 없다. 오직 하얀 눈사람뿐이다. 어디까지나 눈사람은 녹아 없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을 뿐이다. 옆자리와 뒷자리 앉았든 어느 눈사람이라도 금실은실로 만든 목도리와 털모자를 사용하다 떠나지 둘둘 말아 저승 갈 때 가지고 가는지 눈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는 어디쯤에서 내린 걸까. 그는 어느 빈자리에 앉아서 무얼 할까.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장을 치기도 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로 더욱 다가가면 무릎을 꿇어 보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 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양」 부분 인용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양」 만주벌판 타향살이 하면서 추위와 외로움을 잊고 위로 해준 것은 시, 찬바람이 손끝을 시리게 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쓰노라면 흐뭇했으리라. 설령 배고프고 춥더라도 영혼은 누구보다도 배불렀을 것이다. 그렇게 남긴 쌀랑쌀랑한 시들은 추운 게 아니라 따뜻한 아랫목처럼 읽을수록 행복했을 것이다. ‘싸락눈이 와서 문장을 치기도 하는데’ 참 멋지다. 싸락눈, 함박눈들이 다정한 시와 소설을 만들고, 노래와 그림을 만들고, 사랑과 꿈을 만들고……,


  싸락눈 하니 생각이 난다. 나뭇잎마다 풀잎마다 서리가 내렸다. 곧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다. 땀 흘리며 돌 하나 갖다 놓지 않아도 가평에 가면 ‘나타사와 흰당나귀’ 별장이 있다. 그곳에서 금빛 돼지를 만나는 꿈을 꾸는데 ‘긴급문자’ 12월 10일 경기지역 대설주의보 발효 소리에 놀라서 깼다. 그날 가평에 사는 소꿉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밖을 보는 순간 도망자처럼 어디로 갈지 우왕좌왕 했다. 염색하지 않은 흰옷 입은 신선들이 앞산 산마루에서 시냇가에서 눈썰매장 지붕에서 뒤란 잣나무들이 서둘러 가라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나타사와 흰당나귀’ 아름다운 별장을 관리하는 문우를 깨워 넓은 마당을 쓸고 비탈진 언덕을 치우느라 사우나 하듯 했다. 보고 싶었던 친구를 못 만나도 서울로 가야했다. 발목까지 쌓인 눈을 치우느라 팔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헉헉거리며 쓸다보니 이웃사람들이 나왔다. 겨울은 겨울이니까 추운 것이고 그래서 따뜻하기도 하다. 질화로 대신 온풍기가 있고 아랫목이 있고 손난로도 있다. 어묵 국물이랑 호떡도 있고 붕어빵도 있다. 그 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싸락눈이 펑펑 함박눈이 펑펑 내려도 외롭지 않으리라.





*김다솜 2015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나를 두고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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