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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정윤천/금남로를 지나갈 때면 시인이 생각났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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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8회 작성일 19-07-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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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정윤천/금남로를 지나갈 때면 시인이 생각났다 외 1편


금남로를 지나갈 때면 시인이 생각났다 외 1편


정윤천



예술의 거리 쪽에
시인이 먼저 나와 있었다


계피향에 찌든
방석 너머에서 자신을 한껏
낮은 목소리로 소개했던
시인과는 초면이었다


말수가 적은 그가 
바둑을 내게 물어 왔는데
입으로보다는 손으로 들려주고 싶은
사실이 있었는가 보았다


전체를 살피는 눈이
한 수 위에 있었다


하단에 걸쳐보았던
내 축 머리 한 점이
참새처럼 작아지는 것 같았다


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몰린
패석들이
금남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죽은 돌을 들어내던
시인의 손목 앞에서
그에게로 시를 끄집어 내보는 일이
참람해지는 것 같았다


이 거리에서 죽은 이들의 발자국 소리도
참람해져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금남로를 지나갈 때면
시인의 손목이 생각났다.





어른이 되어야 알 수 있는 일



  백금녀와 서영춘네 마당 귀퉁이는 개울가에 닿아 있었다 개천의 상류에는 호가 파여져 있었고 육이오 때 포가 떨어진 자리라고들 하였다 가끔 부잡스런 청년들이 자라와 메기를 잡아내 오던 호 속은 한낮에도 까마득하게 깊어 보였는데 호에서 흘러나온 물의 발목들이 잘 나가던 시절의 순실 댁 마냥 개천을 밟고 지나가며 있었다 가난한 백성 같은 아이들이 호 아래 개천 안에서 끈하게 어울리고는 하였다


 개울가 집이 백금녀와 서영춘의 등기로 바뀐 뒤부터 백금녀는 개천 일대 어거지 주인 질을 놓고는 하였다 서영춘에게 터지거나 얻어듣고 나온 날은 애꿎은 개천 살림을 훼방 놓곤 하였다


 마른 미역 다발과 멸치 등속을 장에 내다 팔러 나가는 백금녀 뒤에서 물 속 같이 남은 서영춘은 기침을 불러 노닐다가 망년의 처녀 박씨 같은 하루를 혼자서 뱉어내곤 하였다


 호와 개천에서 건져 올린 청년들의 민물거리로 백금녀와 서영춘네 마당에서 매운탕 잔치가 열리던 날 백금녀는 마음 먹고 마을 아나운서인 지지배배 한천 댁을 찬 개울 속으로 투포환처럼 던져 넣어 버렸다 그 후론 백금녀와 서영춘에게 연루되었던 구구 팔십 일 같은 소리 소문들도 우물집 앵두나무 가지 밑에서 채송화 밭가에서 희미해져 가고 말았다


 호에서 산다는 발 달린 이무기가 승천하기 좋을 만큼 한참의 소나기가 하늘에 사다리를 걸쳤던 날도 있었다 개천이 먼저 흠씬 울어 대었고 잔비가 그치지 않은 둑 위에서는 서영춘의 칼부림 춤을 도망 나온 백금녀가 이무기같이 음산한 목구멍 소리를 하늘 가차이 올려 보내 주고 있었다 빗물에 젖은 셔츠바람 속에서 빗물에 젖은 수박 통 젖가슴이 호처럼 따라 흔들리며 있었다 검고 튼튼한 오디 꼭지까지 훔쳐본 놈들도 더러는 생겨났다


 서영춘이 먼저 개울가 집에서 생전의 기침소리를 마감하자 장에 나간 백금녀는 그 길로 개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역 다발처럼 넓고 푸짐한 백금녀가 마른 멸치 같았던 서영춘에게 심심하면 깨지거나 피를 보는 이유가 호 속에 지낸다는 이무기만큼이나 궁금한 나이가 들도록 어른들은 끼리끼리만 차차 어른이 되면 절로 알게 될 거라는 비겁한 대답의 날들이 개천 속으로는 흘러갔다


 누군가는 가끔 백금녀의 검고 튼실한 오디 꼭지를 떠올려 주기는 하였다.





*정윤천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1년 《실천문학》 신인으로 작품활동.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더올랐다』,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구석』,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 은행나무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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