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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반연희/모호한 그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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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반연희/모호한 그림 외 1편
모호한 그림 외 1편
반연희
보이는데도
구름 속의 양처럼
전등 속의 전선처럼
상자 속의 썩은 귤처럼
태양빛에 가려진 달처럼
보이지 않는 걸까
양떼 속의 양처럼
전선 속의 전류처럼
양계장 속의 달걀처럼
눈알 떨어진 인형처럼
한낮에 쏟아져 눈을 뜰 수 없는 태양처럼
보일 듯 말 듯
새벽안개 속 신호등처럼
내가 던진 농담처럼
식탁 밑으로 숨은 신발처럼
한 봉지로 묶인 잉여의 시간처럼
왜 그들은 그렇게
끝이야, 끝일까?
무거워 보이는 나뭇가지 좀 봐
알아챘구나,
완성되기 위해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걸
꽃이 떨어져 완성되는 봄
비겁했던 날이 있어
그림 속에 나를 걸어놓고
밥솥이 되고 다리미가 되고
던져지는 돌멩이가 되고
아무도 되지 않았지
일상이 쉼표야
지루하게 이어지는 문장만 남겨졌지
비가 온다 썼다
회색 맛이 난다 고쳐 썼어
손가락 끝에서도 일요일 냄새가 나
이미 다시 시작되고 있는 걸까
여름이 된 봄처럼
우주에서 폭발하는 별처럼
이름으로만 남겨진 너처럼
내 세계 속에 지루하게 스며드는 모든 것들처럼
*반연희 2001년 《다층》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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