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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허청미/날파리가 냉장고에서 죽은 까닭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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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21회 작성일 19-07-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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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허청미/날파리가 냉장고에서 죽은 까닭을 외 1편


날파리가 냉장고에서 죽은 까닭을 외 1편


허청미



나는 모릅니다


육중한 문을 열고 어떻게 들어갔는지, 왜 들어갔는지, 왜 죽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평소에 나처럼 달달한 바나나를 좋아한다는 것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을 나보다 무척 좋아한다는 것
몸뚱이가 각질이고 아주 빠르다는 것
흑임자 비슷해서 가끔 내가 깜박 속았다는 것 밖에
나는 모릅니다


정전이 안 되면 365일 냉동 냉장 기능에 절대 오류가 없는
인간중심의 편리한 발명품 속으로
왜 날파리가 틈입했을까
왜 냉장고 속은 일 년 내내 霜降인데 문이 여닫히는 경계는 따뜻할까
왜 그런 곳에 까만 주검이 있었을까
나는 모릅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고 말한
로맹 가리가
모모 앞에서 로자 아줌마는 죽어갔다고 말한
에밀 아자르가
죽음에 대해서 피력한 異名同人이었다는 것 밖에
나는 모릅니다


세상이 타오를 듯 이글거리는 날 아직 나는 숨을 쉬고 있었고
날파리는 냉장고에서 죽어있었고
밖에서 돌아오는 아이 어른 모두 너무 뜨거워 죽을 것 같다고
사람 중심의 세상 속에서
허풍인지 과장인지 진실인지
에어컨 작동 중인 집안에 있는
나는 모릅니다


아직 선풍기 날개가 이카루스 날개처럼 녹아내리지 않는데
창 너머 목백일홍이 불타는 세기의 이상 징후를
날파리는 마지막 날숨에서 알았을까요
나는 그것을 모릅니다





회귀
ㅡ생일 유감



어제는 음력 오월 초아흐레, 어머니의 기일
오늘은 나의 생일


이른 새벽 부석한 눈을 뜨고 곰곰 생각해보니
문득,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는데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 만무한 일이 아닌가
아직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게 맞다
이건 논리적이 아닌가


음력 오월 초열흘, 밤하늘엔 산달 가까운 임부의 배처럼
달 배가 봉긋하고, 미풍 같은 숨소리 잔잔히 결이 인다
나는 심해 속 수부처럼 유영하는 벌거숭이
온전히 나를 품은 우주의 성소인 듯
마하 너머 고요한 바다, 따뜻하다
귀가 먹먹하고 눈이 캄캄하고 혀가 타들어가는
천둥 번개 폭풍 먹구름 따위는
달 바깥에 일,


봉긋한 반달, 세상 끝점에 뜬 둥근 어머니의 배
저 달이 태중인거다
먼― 먼― 거기
늙은 태아가 웅크리고 있다 참 느긋하다
달이 차오를 때까지 충분하다
태아의 이름으로
우주 첫 순례 길을 출발해 오늘 이 별에 당도하는 중


아득히 먼 부저소리
엄마, 생신 축하해요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너는 누구니ㅡ





*허청미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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