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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기명숙/회전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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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시/기명숙/회전문 외 1편
회전문 외 1편
기명숙
멀미가 나도록 회전하며 줄 세워 한 사람씩 튕겨낼 때
유리벽 안쪽에서 순종하는 고막을 달기로 한다.
앞 칸 그림자 밟지 않고 졸음 섞인 입 냄새 따위를 발설할 입도 없이
오늘을 조문하듯 감색 넥타이 검은 외투의 긴 행렬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카페인 중독증 태양, 눈꺼풀이 안 열린다.
회전문을 통과 각자 사무실로 올라가면 비밀의 은유를 심는다.
빌딩을 떠받치는 것이 질병의 숙주일 거라는 소문도 있다.
360도 회전하는 벽 앞에서 망설임의 조건들, 순간 열림의 공포
우리들 중 누군가는 잡상인처럼 걸러지고
현관 앞에서 택배 일련번호로 질질 끌려 나간다.
비닐봉투처럼 내장을 들어내고 퍽 하고 찢어질지도 모르지.
한 방향으로 떠밀리며 삼키는 의혹과 질문들
지침대로만 걷는 보폭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낙오가 된다.
세상사 한 발 늦은 사내가 통유리에 이마가 박살난 적 있다.
이빨 빠진 낫의 등허리, 썩어가는 고등어 한 손을 떠올리는 건
지난여름 아무렇게나 뱉어버렸던 자두 씨의 행방과도 같다.
내벽이 너무 투명해 불안한 옷깃을 여밀 수 없고
손바닥만 한 햇볕 한 장으로 눅눅한 심장을 말릴 수도 없는
입장할 때 폐쇄 공포증 앓는 표정이었다가
튕겨 나올 때 사회부적응자의 명찰을 달고 온다.
매일 콘크리트 사막을 걷는다 사막엔 문이 없다.
브런치 목록
환절통을 앓는 비 소리 한 숟가락
추락하는 가을, 창밖 풍경 한 접시
꽃병 속 장미의 화려한 언술
커피 한 잔의 말줄임표의 표식들
바게트에 스미는 기다랗고 바삭한 심정
중얼거리는 테이블과 양장본이 된 사람들
*기명숙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북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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