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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신작시/이외현/배부르셨나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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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01회 작성일 20-01-2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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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신작시/이외현/배부르셨나요 외 1편


이외현


배부르셨나요



엄마, 배불렀어요?
배, 부른 적 없는데,


부르지 않아도 튀어나오는 배,
태아가 없어도 언제나 불룩한 배,
기억상실증에 걸려 들어가지 않는 배,
주먹으로 때려도 피하지 않고 얻어맞는 배,


배부르셨습니까. 배 주인이 묻는다.
배, 안 불렀는데요.
배를 내려다보며 배부르셨네요. 뭘.
글쎄, 배 안 불렀다니까요.


배에 기대어 바닷물에 찌를 담근다.
출렁이는 낚싯대가 배처럼 휜다.
낚은 생선회를 떠 배 두드리며 먹고,
후식으로 배까지 먹고 나니 배가 아프다.
배는 평소보다 두, 세, 배나 볼록하다.
선주는 이 배, 그 배, 저 배 번갈아보며 
이제 배부르셨나요?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그녀는 애인처럼 살가운 남자를 원한다. 친구처럼 편안한 여자를 원한다. 만날 때면 그녀는 후미진 구석을 찾는다. 그는 늘 당당하게 가운데 자리를 고집한다. 그녀는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야릇한 분위기가 된다. 그는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메뉴판을 먼저 찾는다.


그녀는 그가 너만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길 바란다. 그는 간지러운 소리는 못한다면서 뜬구름 잡는 허세만 두둑하다. 그는 뜬금없이 나타났다가 총총히 사라진다.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아무 꼬투리도 남기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걸지만 그는 여자에게 실오라기 하나 걸지 않는다. 말없이 연락이 끊겨 전화를 기다리는 그녀는 박제가 되어간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머리를 콩콩 쥐어박고 환장한 심장을 쥐어뜯는다. 울다가 웃다가, 방안 가득 생각이 떠다니는 말풍선에 채인다. 비비 꼬인 이불에 뒤채이며 지새는 밤들이 가을 뙤약볕에 영근다.


애초부터 시선이 달랐다. 그녀는 의문의 꼬리를 자르고 끊임없이 재생되는 생각의 테이프를 지운다. 웃기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애인 같은 남자를 원하지만 파도 소리만 가득한 동굴에 갇히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 남자는 하룻밤 친구 같은 애인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맨다.


그가 그녀에게로 다시 오기만 한다면, 애써 지운 테이프들은 찌걱찌걱 복원이 되고, 필시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맘이 변하기 전에 여자들의 손이 타지 않는 깊은 산 속 외딴 집에 숨겨둘 것이다. 불룩한 허리에 깍지 끼고 두툼한 입술을 부비부비할 것이다. 홍시처럼 빨고 싶은 창시 빠진 그녀는, 그만 보면 사지가 풀리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친 심장을 가졌다.





*이외현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본지 편집장.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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