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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시집속의 시/정미소/잠깐의 물 파문을 그린 후 사라지는 조약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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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48회 작성일 20-01-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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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시집속의 시/정미소/잠깐의 물 파문을 그린 후 사라지는 조약돌처럼


정미소


잠깐의 물 파문을 그린 후 사라지는 조약돌처럼
―김 순찬 시집 『칡넝쿨의 숙명』 리토피아포에지·94 발간



남들과 같이 떳떳한 나무기둥하나 없는 게
늘 한이 되었나보다
한여름엔 왕성한 욕심으로 넓은 들녘과
바위언덕을 점령하기도 했지


높은 키 버드나무를 뒤덮어
거목인양 우쭐대고
까맣게 죽어버린 고목에 푸른 옷 입혀
살아있는 척도 했다


호기심이 넘쳐 도로변 펜스를 넘기도 하고
고속도로까지 무모한 질주도 해봤다


그러다 원래모습이 드러나는 초겨울
비참한 최후의 순간 넝쿨줄기는
결국 나무기둥 없이 자취를 감춘다.


-「칡넝쿨의 숙명전문」


 리토피아에서 김순찬시집 『칡넝쿨의 숙명』이 발간되었다. 시집의 첫 장을 열어 시인의 약력을 보니, 인천에서 성장하여 한양대학교 국문과에서 목월 선생님의 제자이시다. 시인은 한여름에 줄기를 뻗는 왕성한 칡넝쿨처럼 넓은 들녘과 척박한 바위를 점령하며 거침없이 살았다. 남들과 같이 변변한 기둥 없이 지지대도 없이, 스스로 개척하며 생존해야 하는 전쟁터 같은 삶의 바닥에서 뿌리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웠다. 돌아보면 무모할 정도로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이루기 위해 자존심을 걸기도 했다. 넘치는 호기심이 위험천만한 고속도로의 펜스를 타고 넘다가 실패도 하였고, 칡의 근성을 따라 안으로 더욱 단단해 지기도 하였다. 그토록 몸부림치며 질주하던 성하盛夏의 계절을 돌아보니 이제 살아갈 날이 동짓달 해걸음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삶 그리고 마무리’를 향하여 사색의 틈을 만든다. 자연의 선물인 습지와 생태공원, 이끼 낀 사적지를 느긋하게 돌아보며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금은 불편한 관절이 고통스러울 때는 시 한 수 읊조린다. 시인은 초겨울바람이 칡넝쿨의 왕성한 잎을 거두어 간 맨살을 바라보며 ‘삶의 마지막 날’을 기록한다. 편안하게 마지막 밤을 누워서 고요하게 맞이하고 싶은 소망.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남기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고, 화려한 것도 싫지만 남루한 것도 싫다. 오늘도 철없는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과 더 배우고 싶은 것들에게 손을 내밀어본다. 유언처럼 이 땅에 무덤을 만들지 말고, 맥박이 멈추는 대로 한 줄기 연기로 홀연히 떠나고 싶다고 한다. 바다에 던진 조약돌처럼 잠깐의 물 파문을 그린 후 이내 사라지는 잊혀진 사람. 잡을 수 없는 사랑에 평생을 매달린 바보 같은 사람이어서, 허무한 이생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시인의 여정에 칡넝쿨의 생애가 읽혀진다. 의지할 나무기둥 하나 없이 스스로 개척하며 전력질주 한 삶이 꽃 진 자리를 바라보는 늦가을이 오히려 편안하다. 생사필멸生死必滅. 시인의 노래가 행복한 자취이기를 소망드린다.





*정미소 2011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구상나무 광배』, 『벼락의 꼬리』. 리토피아 문학상 수상. 본지 부주간.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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