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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2014년 가을호,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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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333회 작성일 15-06-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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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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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3편

절벽

 

 

절벽은 제 아랫도리를 본 적 없다

직벽이다

진달래 피어 몸이 가렵기는 했지만

한 번도 누군가를 안아본 적 없다

움켜쥘 수 없다

손 문드러진 천형(天刑) 직벽이기 때문이다

솔기 흔적만 본다면

한때 절벽도 반듯한 이목구비가 있었겠다

옆구리 흉터에 꽈리 튼 직립 폭포는

직벽을 프린트해서 빙폭을 세웠다

구름의 풍경(風磬)을 달았던 휴식은 잠깐,

움직일 수도 없다

건너편 절벽 때문이다

더 가파른 직벽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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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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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과 분홍의 차이

 

 

겨울 노루귀 안에 몇 개의 방이 준비되어 있음을 아는지 흰색은 햇빛을 따라간 질서이지만 그 무채색 마저 분홍과의 망설임에 속한다 분홍은 흰색을 벗어나려는 격렬함이다 노루귀는 흰 꽃잎에 무거운 추를 달았던 것, 분홍이 아니라도 무엇인가 노루귀를 건드렸다면 노루귀는 몇 세대를 거듭해서 다른 꽃을 피웠을 것이다 더욱이 분홍이라니! 분홍은 病의 깊이, 분홍은 육체가 생기기 시작한 겨울 숲이 울고있는 흔적, 분홍은 또 다른 감각에 도달하고픈 노루귀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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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얼굴, 내간채를 얻다, 날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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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송재학은 시다!

 

죽음의 긴 혓바닥이 그의 턱을 쓸었던 모양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뼛속까지 배어 있는 그의 목울대에 우울이 갈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그는 위반과 불온과 부정의 어법으로 언어가 갈 수 없는 먼 곳까지 언어를 데리고 가는 사람, 아니 언어를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귀신이라는 사실만 상기하기로 했다. 만약 그가 진정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면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나는 지금 그가 죽음을 넘어섰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죽음까지도 작정하고 언어로 부리는 시인. 그런 그를 나는 오래전부터 시귀신이라 불렀다. 사람을 벗는 일에 평생을 바쳐야 겨우 하나 얻어들을 수 있는 이름, 귀신. 그에게 죽음은 유년의 마당에서 이마받이 하며 바라보았던 아버지의 봉분이었을 거다. 그렇게 매일 들여다보았던 죽음, 그것은 갈증. 그렇게 그는 천형처럼 시를 파고 또 판다. 하루도 쉬지 않고 파내려가는 땅 속 깊은 어느 곳에 색계와 무색계, 소리와 침묵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운율의 나라가 있음을 확신한다. 그는 지금 손으로는 잡히지 않지만 귀로는 들리는, 귀로는 들리지만 발로는 갈 수 없는 음악 같은 시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골똘하다. 그리하여 타인의 출입금지! 팻말을 가슴에 걸고 홀로 그 나라를 향해 목숨 내놓고 용맹정진 한다./사진,글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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