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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2016년 여름호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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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
1959년 현대문학 등단.
1961년 제1회 ‘연세문학상’, 1976년 한국문학작가상, 1989년 미주문학상, 1997년 이산문학상, 1997년 편운문학상, 2003년 동서문학상, 2009년 현대문학상, 2011년 박두진 문학상.
시집/ 『조용한 개선』, 『두 번째 겨울』, .『평균율1』(공동시집),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마종기 시전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파타고니아의 양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채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가끔은 나도 사랑, 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선생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봄이었을까, 바람이 낮게 무릎 아래로 흘러갔던 기억이다. 난생 처음 선생을 만나는 자리가 어색해서 오색의 도시락을 싸서 들고 나갔다. 카메라 한 대 어깨에 메고, 도시락을 든 채 악수할 손이 마땅찮았다. 고개만 주억거리고 도시락을 활짝 펼쳐놓았었다. 그리고 함께 먹었던 밥! 그 한 끼의 식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인터뷰하는 동안 이상할 정도로 주고받은 말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 것 같았다. 모국어, 라는 낯선 단어에 목이 메기도 하고. 아내, 라는 익숙한 단어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낯설지 않음의 낯설음에 내심 혼자 당황스러웠다. 시가 뭐냐고 물었을 때, 고국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울컥, 하면서 카메라의 파인더 속으로 선생을 훔쳤던 것 같다. 선생은 고요하고, 단정하고,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예각의 눈빛이 아름다웠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뭐랄까, 거침없이 따라 걷는 시인의 보폭이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훌쩍 지나 오늘, 문득 선생의 안부가 궁금하다. 늘, 그만큼에서 빛나시길!/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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