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Art-Artist
김상미 시인(2019년 여름호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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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박인환문학상, 시와표현 작품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기차는 떠나고
기차는 떠나고
기차는 떠나고
강처럼 흐르는 레일 위로
꿈같은 기차는 떠나고
꽃피는 걸 보려고
꽃밭에 앉아
거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혼잡한 발소리
그리운 듯 막연한
사람들의 체취에
조금씩 더 쓸쓸해지는 오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차는 떠나고
기차는 떠나고
미미
내가 사랑한 미미는 그의 여자
여자인 내가 봐도 기차게 예쁜 옆모습
옆모습의 각도가 진짜 예술이다
예술이다! 남자들이 소리칠 때마다 환하게 웃는
웃는 모습 또한 새벽 나팔꽃 같은 미미
미미라는 이름은 그가 붙여준 애칭
애칭이 진짜 이름보다 더 잘 어울리는 미미
미미야 너는 어디에서 왔니? 사람들이 물으면
물으면 다쳐요! 재빨리 고개 돌리는 미미
미미는 내가 사랑한 여자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
여자를 모두 모아 만들어놓은 듯 부드러운
부드러운 모래언덕
모래언덕에 빠진 발을 조심하세요! 툭 쏘는 푸른 전갈
푸른 전갈에 물리면 다시는 미미를 볼 수 없어요
다시는 미미를 볼 수 없다니 오, 미미!
미미는 내가 사랑한 여자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여자
김상미, 슬픔의 발랄한 각도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그녀의 방을. 그녀의 산책길을. 그리고 그녀와 함께 걷는 그 골목의 바람을. 바람의 냄새를. 무연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하늘을. 별들 사이로 흘러가는 검은 밤의 시냇물을. 밤으로 건너가는 발자국을. 가다가 문득, 뒤 돌아다보는 그림자를. 멈춰서 귀 기울이는 그녀의 이생과 전생의 소리들을. 그리고 또 가끔씩 그녀의 이름도 불러본다. 김상미…, 시인 말고는 다른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 그녀 속에서는 이상한 소용돌이 무늬가 보이기도 한다. 그 무늬들을 받아쓰다 보면 다시 또 그녀의 목소리에 도착한다. 둘째 절의 음가를 조금 높이 들어 올리는 습성에 혼자 웃어도 보고. 홀로 강가에 나가 있는 그녀의 먼발치에 앉기도 한다. 아주 가끔씩 그대여, 괜찮으신가? 묻고 싶지만, 묵음으로 내리는 밤비처럼, 무언의 증인처럼 질문을 거두어들인다. 아, 그녀는 지금 또 길 없는 길, 어디론가 성큼 걸어 들어가는 모양이다. 서둘러 그녀의 발목을 따라가지만, 없다. 시야에서 사라진 그녀는 문자를 죽이고 또 문자를 세우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 무작정 기울어지는 중인가 보다./손현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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