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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시인(2008년 여름호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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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려는 시
하종오 시인
하종오 시인은 1954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다. 호는 하시河詩이며 고형렬 시인이 지어주었다. 1975년《현대문학》에 시 <허수아비의 꿈>, <사미인곡> 등을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한 후, 1979년 《창작과비평》에 시 <야행>, <참나무가 대나무에게> 등을 발표하면서 [img2]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전개했다. 1980년 반시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민요연구회에 참가하여 ‘굿시’라는 독특한 형식의 시를 써서 무당굿으로 연행하기도 했다. 첫 시집《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를 낸 이후,《사월에서 오월로》《넋이야 넋이로다》《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쥐똥나무울타리》《사물의 운명》《무언가 찾아올 적엔》《반대쪽 천국》《지옥처럼 낯선》《아시아계 한국인들》《국경 없는 공장》님 연작시집으로《님 시편》《님》《님 시집》 등을 출간했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하고, 2006년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을 수상했다.
원어
동남아인 두 여인이 소곤거렸다
고향 가는 열차에서
나는 말소리에 귀기울였다
각각 무릎에 앉아 잠든 아기 둘은
두 여인 닮았다
맞은편에 앉은 나는
짐짓 차창 밖 보는 척하며
한마디쯤 알아들어 보려고 했다
휙 지나가는 먼 산굽이
나무 우거진 비탈에
산그늘 깊었다
두 여인이 잠잠하기에
내가 슬쩍 곁눈질하니
머리 기대고 졸다가 언뜻 잠꼬대하는데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이었다
두 여인이 동남아 어느 나라 시골에서
우리 나라 시골로 시집 왔든 간에
내가 왜 공연히 호기심 가지는가
한잠 자고 난 아기 둘이 칭얼거리자
두 여인이 깨어나 등 토닥거리며 달래었다
한국말로,
울지 말거레이
집에 다 와간데이
위험한 키스
네팔 처녀는 반십년 전
고향집에서 우리에 들어가
먹이를 줄 적에
다가와 처박던
돼지 입을 떠올리고
되새김질하던
소 입을 떠올리고
손발을 핥아대던
개 입을 떠올렸다
공장장이 주먹으로 툭, 툭, 툭, 치며
벽에다 몰아 부쳐서 입술을 대는 순간
네팔 처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돼지 입보다 더럽다고
소 입보다 더럽다고
개 입보다 더럽다고
얼굴에 침을 퉤, 퉤, 퉤, 뱉었다
그래도 공장장이 쓰윽 닦고는 입술을 덮치는 순간
네팔 처녀는 이빨로 앙 깨물어 버렸다
봉급 한 푼도 못 받고
즉각 쫓겨난 네팔 처녀는
먹이를 받아먹던
돼지 입은 물컹물컹하고
소 입은 물렁물렁하고
개 입은 말랑말랑했는데
한 번도 입맞추어 보지 못했다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웃었다
1980년대 하종오 시인은 군사정권의 폭압과 자본의 횡포에 고통받는 민중을 형상화하면서, 희망과 투쟁의 힘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몇 년간의 절필을 거친 후 1994년 상재한《님 시편》에서부터 ‘님’ 연작시를 발표하면서, 그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간, 님과의 만남과 이별의 고통스러운 도정은 시인의 정신에 넉넉함과 겸손, 그리고 깊이와 단단함을 획득할 수 있게 하였을 것이다. 《아시아계 한국인들》과 《국경 없는 공장》에서, 하종오 시인은 이들 유색인 노동자 및 여성들에 ‘이리저리’ 수평적으로 접근하여 이러한 척도를 바탕으로 한 무의식적 판단을 해체한다. 두 시집 모두 코시안과 이주노동자에 다차원적으로 접근하여 이들 역시 수다한 개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형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인은 이들을 어떤 척도에 의해 서열화된, 또는 어떤 이론에 의해 자리매김된 존재로 보여주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이성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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