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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화가(2006년 가을호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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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10,784회 작성일 08-12-2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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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정신을 추구하는  농민화가
이종구 화백

1954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하여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음./개인전-1976년 이종구 습작전(인천시 공보관, 인천)을 시작으로 1990년 <오지리 사람들>(오지초등학교, 서산), 1992년 <땅의 사람들>(학고재, 서울), 2004년 땅의 정신 땅의 얼굴(북하우스, 예술마을 헤이리,파주), 2005년 2005, 올해의 작가-이종구(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등 다수./주요 단체전 기획전-1980~83년 조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을 비롯하여, 19[img2]88년 민중미술-한국의 새로운 문화운동(아티스츠 스페이스, 뉴욕,미국), 1989년 황토현에서 곰나루까지(예술마당 금강, 서울), 1993년 땅의 현실전-김정헌 이종구 2인전(서인사랑, 서산), 2005년 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6년 한국미술 100년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등 다수./1998년부터 2000년가지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의 삽화(한겨레신문, 816회)를 연재했음./수상-1982년 중앙미술대전 특선 (중앙일보사), 1983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중앙일보사), 1994년 가나미술상(가나아트)을 수상했으며,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음./저서로 『땅의 정신 땅의 얼굴』(한길아트, 2004)이 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 교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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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온 지도 어언 20여 년이 흘렀다. 내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1980년대 초반은 총체적으로 부조리한 권력이 사회를 억압했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만연한 권위주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 나는 작가란 본질적으로 시대의 기록자요 감시자이고, 나아가 비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예술이 인간다운 삶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도 있었다. 리얼리즘으로서 나의 그림이 시작된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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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이 시작된 곳은 내 고향 충남 서산의 농촌마을이었다. 나는 우리시대 보통의 농촌 오지리와 그곳 사람들을 그려서 과거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고 세계화 과정에서 몰락하는 농촌현실을 그렸다. 그곳은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모순과 부조리가 집약된 현장이었으며, 아직도 농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삶이 여전히 진행되는 장소였다. 나는 가족과 이웃들의 고단한 삶을 새삼 발견했고, 이들이 게으름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빈곤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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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나는 상처 난 세계를 그리는데 내 작업의 중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과 방법은 나의 예술적 목표이자 주제이며 명제가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농촌이든, 국토의 전반이든, 제3세계의 현실이든 지역적 삶을 중심으로 대등하고 동등한 세계화를 위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한 세상을 향한 나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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