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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2017년 봄호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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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55년 강원도 삼척 출생,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현대시학으로 등단. 『겨울 판화』. 『나는 열고 싶다』. 『상어 떼와 놀던 어린 시절』. 『슬픈 농담』 외 다수의 산문집과 여행서가 있으며 100여 나라를 여행했다.
양
달리는 차를 세웠지
온통 노랑과 초록물결인 몽골 초원
그렇게 광활한 유채평원은 처음이었어.
양떼들은 거친 곳에 몰려 풀을 뜯었지
철조망 하나만 넘으면 풍요의 땅인데
주인은 왜 양에게 경계 밖을 고집하는 걸까
그때 누군가 알려 주었어
저 풍요로운 풀밭에 풀어놓으면
양들은 허겁지겁 성찬에만 눈이 멀어
배가 터져 죽게 된다고
먹어도먹어도 허기지는 메마른 풀밭에 두는 건
오직 배 터져 죽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사람이 가까이 가도 꿈쩍 않고 풀만 뜯는 양을 보며
굶주린 콘도르가 살아있는 양의 눈알을 빼먹고 나면
눈을 잃어 장님이 된 양을 통째로 구워먹었다는
마종기의 시인의 ‘파타고니아의 양’이 생각났지
양떼도 날이 저물면 별자리를 보고
집을 찾는다는 말은 믿기지 않았지만
전날 내가 손가락을 빨며 배부르게 먹은 고기도
배가 터져서 죽은 슬픈 운명의 양은 아니었을까
먹이다툼으로 살생이 일상이 되어버린 인간계
양의 눈알을 노리는 굶주린 파타고니아의 독수리와
배 터져 죽은 몽골의 양과 그 양고기를 먹는 사람들
그날 이후 나는 양을 볼 때마다
불룩한 눈알과 배를 보는 버릇이 생겼지
그것이 슬픔인지 기쁨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도 첫날처럼 시작 못한 이야기가 있었지
께냐*
마추픽추를 돌아 쿠스코 난장에서 께냐 하나를 샀다
안데스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한 선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살아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많을수록
죽은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는 걸 아는 듯
사랑하는 사람의 정강이뼈로 만들었다는
잉카의 전설을 익히 아는 그가 밤마다 께냐를 불었다
곁에 있으면 그리움이 될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
저릿저릿 흘러가는 강물도 말라
웃어도 저리 애끓는 가락이 되었구나
바람 속 먼지처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구멍마다 흘러나와 어깨를 도닥여주는 노랫말
괜찮아 다 괜찮아 영혼을 위무하는 피리소리
한 생을 달려간다 해도 다시 못 볼 그 한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 탄생하는 악기
오늘, 살아서 불어주는 그대의 께냐
*안데스 피리
김인자, 태양을 걸어서 간다!
김인자, 그녀는 매일 떠나는 사람이다. 그녀가 다녀온 지구촌의 곳곳은 아마도 100여 곳이 넘을 성 싶다. 매일, 그녀는 모르는 어느 곳을 향해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그런 그녀를 여행자 시인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런 명칭은 너무 간단하거나 틀렸다. 아침이 저녁을 향해 매일 걷듯, 그녀는 그저 그곳을 향해 언제나 걸어가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새 것인 하루를 헐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듯, 그녀 역시 지구촌 어딘가의 누구를 매일 만나 사랑 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아마도 내가 여기서 천리향에 물을 줄 때, 그녀는 아프리카 어디에서 배고픈 아이들과 기꺼이 밥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 가끔씩 바람결에 들려오는 그녀의 전언 속에는 어딘가를 오래 걷고 있다는 소식.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왜, 그녀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함께 마주앉았던 추억이 적다. 느리고, 또 서두름이 없는 걸음으로 지구의 오지를 100군데도 더 다녀왔을 시인. 무섭지는 않았냐는 나의 우문에 그녀는 언제나 “전혀”라는 현답을 한다. 누군가를 깊이 믿어본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는 절대 믿음과도 같은 “전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일까. 의심과 두려움과 조급함에 갇혀 사는 나는 쉼 없이 발로 걸어서 저, 너머 태양을 가는 시인의 시선을 까닭 없이 피해 도망을 친다. 떠남을 원할 때는 주저 없이 배낭을 지고 카메라를 메고 멀리, 신의 머릿속 같은 오지를 찾아 가는 시인의 걸음. 그것은 아마도 날것의 영혼이 간절하게 원했던 자유, 우주의 숨결을 찾아 가는 수행이리라. 그리하여 어느 날 문득, 내게 슬픈 일이 생기면 나는 그녀를 찾아가리라. 가서, 나도 푸른 지구별의 어디를 함께 말없이 걸어보리라. 그러니 시인이여, 오래도록 거기서 건강하시라!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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