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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엽 시인(2018년 겨울호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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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695회 작성일 19-02-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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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 40. 손현숙의 아트엔 아티스트. 이지엽 시인. 2018. 11. 8

      

1982한국문학백만원고료 신인상 당선. 1984<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다섯 계단의 어둠, 샤갈의 마을, 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 . 시조집 떠도는 삼각형, 사각형에 대하여, 내가 사랑하는 여자 . 동화집 지리산으로 간 반달곰. 논저 문학의 새로운 이해 . 한국시조 작품상, 중앙시조대상, 성균 문학상, 평화문학상, 유심작품상, 가람시조문학상, 계간 열린시학, 시조시학편집주간, 한국동시조발행인,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국시조시학회 회장. 독서문화콘텐츠학회 회장.

 

  지엽1.jpg

 

해남에서 온 편지

 

 

아홉배비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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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

 

 

기차를 타는 순간

우리는 종착역을 생각한다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고

산과 집들을 지나

우리는 반드시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리라

웃고 떠드는 순간 신기하게 역은 지워지고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 채 역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다

지워지는 무늬, 물속으로 가라앉는 발길들

사랑은 늘 그런 것이다

그러니 역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

물길이거나 떨어지는 꽃잎 같은 것

우리는 이미 수건으로 손을 씻었거나 밟고 지나왔다

종착역은 아마 처음 역이었을지도 모를 일

십 수 년 동안 상환해오던 전세금 융자를 다 갚거나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과 어려운 화해를 하고 눈물을 흘렸을 때

방금까지 역은 분명히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감쪽같음을 평화라 명명할 수 있을까?)

하나를 이룩해본 사람은 안다

그 역이 이미 없어지고

짐을 꾸리고 다시 무언가를 위해 허둥대며 떠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늘 시간에 빚을 지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문 닫아 버린 약국을 찾아, 설렁탕집을 찾아

시간은 멀리에 가있고 역도 또한 너무 멀리에 있다

남은 생애의 첫 번째 날*이 시작되면

지금까지의 것을 다 잊어버리고

표를 끊고 개찰구를 들어선다

또 다른 종착역, 실은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그것이

거기 턱 하니 버티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 앱비 호프만.




빨래 두레 밥상

 

 

동그란 바구니 가장자리로

빨래를 빙 걸쳐놓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두레밥상 같다

남자란 뿌리가 실해야 혀

아버지 양말이 한 말씀하신다

예 예 건성인 아들 런닝구

나풀거리며 벌써 발이 뛰어나간다

아가 바뻐도 밥은 꼭 챙겨 묵거라

할머니 고쟁이가 바람에 펄럭대며 또 지청구다

손수건 말아 싼 꼬깃꼬깃한 지폐 감추던

속속곳 주머니가 꽃무늬 팬티를 보고 입을 벌린다

땡땡이 물무늬면 어떻고 쫄쫄한 레깅스면 어쩌랴

 

한 가족의 내력이 죄다 나와

볕을 쬐고 있다

봄이 꼬득꼬득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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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엽, 찰지고 아픈 시의 생을 산다

 

 

이지엽 시인은 해남의 아들이다.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해남의 학동과 서림과 아침 재를 넘어가는 솔바람과 보리향과 황톳길이 무늬로 새겨져 있다. 멀리서 시인을 바라볼 때마다 이상하게 들리는 소리, 소리, 소리들. 그래서 나는 자꾸 그의 쪽으로 고개를 들렸던 모양이다. 뒷모습에서도 들리는 남도창의 애절한 음색. 그것은 저절로 시가 되어서 찰지고 아픈 그의 생이 되었다. 그는 스무 해가 넘도록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두 개의 잡지를 운영한다. ‘열린시학시조시학그러나 그는 그곳에 단 한 번도 그의 특집을 마련한 적이 없다. 그의 소망은 두 개의 잡지가 오롯이 문인들의 넓은 마당이기를 염원한다. 그렇게 그는 권력 앞에서 약해지지 않기를 다짐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대학교수로 밥을 벌고, 그 밥으로 잡지를 만들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국 그가 지향하는 꼭짓점에는 사람과 사랑이 놓여있을 것이다. 시는 그것들을 향해가는 평생의 업이 되었을 터. 찰지고 아픈 시의 생을 자처하는 시인의 앞날에 남도의 바람과 길과 소리들이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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