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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말들의 대화/강경희평론집(리토피아신서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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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신서․7
살아있는 말들의 대화
초판1쇄 인쇄 2008. 11. 26.|발행 2008. 12. 1.
지은이 강경희|펴낸이 정기옥|펴낸곳 리토피아|
ISBN-978-89-89530-88-6 03810
값 12,000원
1.프로필
강경희(姜敬姬) 문학평론가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기계적 상상력이 빚어낸 허무적 나르시시즘」으로 등단했다. 현재 계간『리토피아』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타자의 언어학』『표류와 유출의 상상력』이 있다. 숭실대 및 산업대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2.차례
제1부
응집과 확산의 시선―정끝별의 「1톤 트럭」 11
둥글게 커져 가는 몸의 시간―권혁웅의 「마흔 번의 낮과 밤」 17
죽은 자와 대화하는 법―장철문의 「수신자요금부담은 비싸다」 23
불안의 상상력―김참의 「불면」 30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이별노래―박형준의 「시집」 36
만약 ∼한다면, 그리고……―함기석의 「만약」 44
가난한 현실의 치욕적 글쓰기―안현미의 「거짓말을 제조하다」 50
어디에 빠져 살 것인가?―최창균의 「개구리울음소리」 54
마음의 눈물―윤제림의 「버드나무 아래」 58
이 세상 소풍, 끝나지 않기를―허수경의 「소풍갑시다」 61
보이지 않는, 막혀 있는, 사라지는, 어디에도 없는, 삶 그리고 죽음―박해람의 「릴레이」 64
제2부
이미지의 도식화와 인식 패턴의 다양성 71
보편적 정서의 힘 80
20세기 인간형 88
사랑이 머문 자리 97
시인과 생활인 106
불어라 봄의 열풍아 116
타자의 얼굴 속에 비치는 나의 거울 128
사람살이의 풍경들 138
제3부
겹겹의 시간 속으로 떠가는 존재―최정례론 151
소통에의 열망, 그 출렁임을 꿈꾸는―정채원론 157
기억을 현상現像하다―이정화론 171
절벽 위의 나날들―장성혜론 183
모독의 시대와 싸우는 법―김정란론 198
얇고 뜨거운 지붕 아래서 살아가기―이 경론 203
3.머리말
비평가로 살다보니 자연히 많은 시들을 읽고 해석했다. 내가 읽고 분석해 놓은 글들을 보면서 때로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처음의 분명하고 확실했던 생각이 어느새 확연히 달라졌을 때 밀려오는 당혹감. 그것은 마치 애써 잡은 물고기를 다 잃어버려 텅 빈 그물만을 쳐다보는 난감함과 곤혹스러움의 경험이다.
‘시에는 정답이 없다’고 학생들에게 떠들면서, 어쩌면 나는 시의 해답을 찾으려 골몰했는지 모른다. 시와 씨름했던 불면의 기억들, 언어의 행간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던 나날들, 시인의 숨결에 나의 호흡을 맞추려 했던 안간힘, 그 숱한 시간의 흔적을 엮으면서 나는 왠지 불안하다. 결코 포획되지 않는 살아있는 언어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을까 두려워진다. 내가 마주했던 텍스트들이 실은 나의 고민과 사유를 이입해 놓은 작업이 아니었을까 되묻게 된다.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은 언제나 논리를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논리로 무장할수록 시 읽기는 건조하고 삭막하게 된다. 나의 두려움은 매혹의 대상이었던 시가 딱딱한 언어의 옷에 의해 아름다운 시의 속살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의 언어에 수많은 장식물을 단다. 나의 수사가 시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이끌지 모른다는 환상과 믿음 때문이다.
모든 독서는 불온하다. 그것은 완전할 수 없는 것들을 온전하게 만들고자하는 위험한 시도이다. 내게 시 읽기는 끊임없이 달아나는 물고기를 향한 투망질이다. 미끄러지고 도망치는 살아있는 언어의 속살은 결코 잡히지 않기에 또한 한없이 매력적이다. 시 읽기의 행위는 살아있는 말들과 대화이다. 그것은 때로는 매끄럽게 때로는 삐걱거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시와의 대화는 언제나 소통과 나눔의 원칙을 전제로 한다. 대화는 이것과 저것이 만나고 부딪치고 소통하고 들끓어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지난한 몸부림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치지 않고, 나눌수록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말의 유혹이 지금껏 나를 이끈 힘일지도 모른다. 이 살아있는 말들과의 조우가 두렵지만 행복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를 유폐시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수한 말들과의 대화가 또 다른 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2008년 겨울, 파주 동산에서
강경희
4. 수록 내용 발췌
모독의 시대와 싸우는 법
―김정란론
김정란은 ‘응시’의 시인이다. 그에게 ‘봄’은 곧 ‘이해’이다.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았던 매미 날개와 매미 날개에 머무는 햇살의 순간의 예민한 망설임들을 이해한다.”(「사랑으로 나는」), “우주선이 날아왔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내 눈알두 개가 혼자서 그걸 보았다”(「장난스러운 죽음」), “꿈꾸는 핵/나는 다시 나비를 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졌다”(「나비의 꿈」)는 표현이 함축하듯이 김정란에게 ‘본다’는 행위는 곧 세계 이해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의 응시는 가시적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감각은 “매미 날개에 머무는 햇살”과 더불어 “보지 못했던 오로라와 그 오로라가 우주 먼 곳 태어나지 않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성찰하는 데까지 이른다. 견자見者의 눈으로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고 포옹하려는 태도가 김정란이 보여주는 응시의 철학이다.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데 있어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서성거리지 않는다. 그의 응시는 저돌적이고 열정적이다. 때문에 그의 언어는 열망이 넘치고 순수가 들끓고 젊음이 소용돌이친다. 그런데 이 열정의 가마솥을 데우는 근원적 힘은 차가운 ‘이성’에 있다. 김정란의 차가운 이성은 얼음처럼 날카롭거나 송곳처럼 뾰족하지 않다. 때문에 상처를 찌르고 해부하는 자기부정과 세계파괴의 인식을 드러내기보다는, “상처가 이상한 말의 통로”를 만들어 내고 그 “상처들이 비밀스럽게 편지를 주고받는”(「눈 내리는 마을」) 한없이 조용하고 은밀한 ‘차가운 포근함’을 보여준다. ‘차가운 포근함’은 일찍이 다른 여성시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김정란의 주요한 시적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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