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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현 시집 '바다에 꽃을 심다'(리토피아포에지․145)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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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145
바다에 꽃을 심다
인쇄 2023. 5. 20 발행 2023. 5. 25
지은이 이외현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21315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255번길 13, 903호
전화 032-883-5356 전송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hanmail.net
ISBN-978-89-6412-181-8 03810
값 12,000원
1. 저자
이외현 시인은 2012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안심하고 절망하기'가 있다. 전국계간지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아라문학≫ 편집장이며, 막비시동인과 리토피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목차
제1부
바다에 꽃을 심다 15
참새의 하루 16
아빠와 고모 17
아빠는 휴식 중 18
나른한 오후, 갸르릉 끼잉낑 19
포도 한 알 뒹굴고 20
개미의 오지랖 21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22
번개 23
호랑거미 24
갯벌에 말조개가 없는 이유 25
버드세이버 26
봄, 팥쥐 27
대관령 황태 28
메모의 달인 30
지은이네 콩물집 32
배부르셨나요 34
제2부
그림자 39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40
고픈 42
복타령 43
수중왕국―모아신도시 44
집착 45
신 진도아리랑 46
도시로 간 달팽이 47
대물림 보자기 48
낙타 49
사는 맛 50
용대리 황태 51
보푸라기 숲 52
견딘다는 말 53
그 여자―여왕개미 54
왜 55
복화술―군에 간 아들에게 56
안개 속의 그림자 57
제3부
물봉선·1 61
물봉선·2 62
도토리와 청설모 63
그을음·5―갈비탕이 그녀를 지운다 64
밤의 사역·1―말매미 65
지구 술래 66
해가 발라당 까무러친 날 67
고객 만능시대 68
이 좀 저 좀 70
노란 수선화 71
그을음·11―무기계약 72
진달래는 피고 74
메가네우라 75
그녀의 선술집 76
달맞이꽃 78
조류독감 79
뱁새의 비상·2 80
제4부
영감·1―장래 희망 미망인 83
영감·2―영안실 84
하나개 해수욕장―갯벌의 예술가 85
개망초 시대 86
오우가 87
지하철과 로또 88
곱창천국 90
다비茶毘 91
벼룩과 사자 92
해시계 93
재택 씨의 일상 94
감나무 96
자유통신 98
개의 안부가 궁금하다 100
사수도의 슴새 102
뇌우雷雨 104
해설/손현숙 세상으로 스미는 몸의 방법 105
―이외현의 시세계
4. 평가
그는 대상으로부터 전해지는 개별적인 감정에 전도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인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감정의 과잉 노출을 경계하는 것과 동시에 날것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결국 시인이 지향하는 시의 방법론은 동시대의 예술에 대한 재현과 서사를 벗어나는 일일 것인데, 거침없이 사용하는 의성어들과 배제되어버린 수사들의 운영체계는 오히려 인식의 전환과 함께 낯선 감각을 불러 세운다. 이것은 이번 시집의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이기도 하면서, 이외현의 무의식 속에서 돌출되는 한결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드러나는 사랑과 냉소와 유머의 감각은 다시 그 언어로 체화되면서 이외현의 신체를 만들었다. 이는 감당하기 힘든 불가능의 현실을 문학, 즉 시로 견뎌내고자 하는 시인의 안간힘이겠다. 필자는 다음의 아름다운 시편 속에서 불가능의 가능성을 보는 복을 누린다.
5. 작품
바다에 꽃을 심다
파도가 무너지는 밤에
토담이 쿨럭쿨럭 몸살을 앓고
주인 잃은 초가집은 맥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가느다란 문살이 바람에 떨고
녹슨 대문은 삐걱삐걱 목쉬게 울고
초가지붕에는 잡초가 한가득
마당에는 소문들이 술렁인다.
어린 참새가 비를 물어오면
가지마다 하얀 감꽃이 피고
선착장에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너울너울 바다에 꽃을 심는다.
참새의 하루
날개 접고 자울자울 조는 사이
숲에 데려갈 하루가 도착한다.
짹짹거리는 참새 떼 속에서
간혹 지지배배 낯선 소리 들리고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부리로
할 일을 콕, 콕, 날개에 적는다.
가을볕에 은행이 툭, 떨어지고 참새 떼가 부스럭, 날아오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먹이를 찾는 짹짹 소리 요란한데
가상공간 허방을 짚으며 깃을 치던 날개가 지쳐 고단하다.
해 질 녘 은행을 쪼다가 퉤퉤 뱉고 숲을 나갈 준비를 한다.
작아진 하루가 타작마당에 내리고 곡식 낱알이 흩어져 있다.
허기를 물고 내려앉은 참새 떼 허겁지겁 코 박고 입 채운다.
오늘이 잘려가며 뜨는 달이 지는 해에게 가위표를 한다.
아빠와 고모
아빠는 인천에 직장이 있지만 집에서 다니는 게 멀어 고모집에 산다. 가끔 집에 와 빨래를 하고 집도 치우지만 잠은 자지 않는다. 삼 년 전부터 혼자 살기 시작하여 홀로서기에 익숙해진 초등학교 3학년생에게 아빠는 엄마가 미국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미국 간 엄마는 가끔 전화가 오지만 찾아오지는 않는다. 오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웠는데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고래고래 악을 쓰며 팔을 물어 분노를 씹었다. 이주 째 아빠가 오지 않는 집은 더 이상 들어앉을 공간이 없다. 이불은 그냥 펼쳐져 있고,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과자봉지가 뒹굴어 다닌다. 발로 톡톡 차며, 질겅질겅 밟으며, 후미진 자리로 가 티브이를 본다. 며칠째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밤을 웅크린 채 홀로 견딘다. 아빠는 오늘도 전화만 하고 아는 고모집에서 잔다.
아빠는 휴식 중
방학인데 아침 일찍 아이가 찾아왔다. 돌봄 교실에 문이 잠겨 있어서 왔어요. 아침밥은 먹었니? 고개를 수그린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아빠는 뭐 하시니? 택시 운전이요, 새벽에 들어와요. 밤에 손님들이 많대요. 아침에는 아빠를 깨우면 안 돼요.
점심쯤에 녀석이 또 나타났다. 우리 아빠한테 전화 좀 할게요. 아빠가 전화를 안 받아요. 또 자고 있나 봐요. 집에 가서 밥 먹고 오면 되겠네. 아침에 나올 때 열쇠를 안 가지고 나왔어요. 벨을 누르면 되잖아. 주인집에서 안 열어 줘요. 아이에게 내 도시락을 내민다.
다음날 점심시간, 또 녀석이다. 우리 아빠가 또 자요.
나른한 오후, 갸르릉 끼잉낑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일격을 가하자
숨죽이고 있던 토사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털이 엉겨 붙어 눈썹 커튼을 친 강아지가
한쪽 다리를 절며 터진 오물 주변을 맴돈다.
고양이가 갸르릉거리며 강아지를 위협한다.
강아지는 달아났다가 이내 끼잉낑 다가온다.
고양이가 한 번 더 이빨을 세워서 위협한다.
강아지는 더 멀리 달아났다가 다시 끼잉낑 다가온다.
어미가 버렸는지, 제가 집을 나왔는지,
주인에게 쫓겨났는지는 알 수 없다.
고양이는 몇 개의 생선 뼈와 햄을 주워 먹고
빳빳한 수염 내리고 치켜세운 꼬리 내리고
슬며시 물러난다.
물러가면서 자꾸 돌아본다.
모퉁이를 돌면서 또 돌아본다.
포도 한 알 뒹굴고
포도 한 알이 굴러가더니 거름망 속으로 빠진다.
썩어가는 채소 퀴퀴한 잡냄새가 함께 버무려진다.
물기 빠진 찌꺼기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자
고양이가 뚜껑을 열고 슬그머니 포도를 꺼낸다.
포도는 자동차 경적에 놀란 고양이 손을 빠져나온다.
강아지가 잡으려다 놓치고 경비원 가랑이를 지나서,
자전거 바퀴 사이를 지나고 아파트 정문을 나와서,
도로로 굴러가고 달려오는 버스 밑으로 들어갔다가,
내리는 사람을 피해 하수구로 떼구르르 굴러떨어진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포도 한 알의 그저 그런 질주다.
개미의 오지랖
접시꽃 줄기 벽지를 타고 부지런히 올라간다. 벽 틈에 먹이를 감추고 내려오는 녀석과 외길에서 만난다. 둘 다 앞만 보고 전진하다가 쾅, 하고 부딪힌다. 잠시 주춤한다.
천장 몰딩을 가로지른 페로몬 길을 따라 구멍으로 간다. 마주 오는 녀석과 쾅, 하고 부딪힌다. 잠시 멈칫거리다가 한 녀석이 길을 열어 주고 또 제 갈 길을 간다.
수개미가 여왕개미의 페로몬을 따라 사랑을 배달하러 간다. 일개미는 친구의 길잡이 페로몬을 따라 부스러기를 나른다. 병정개미가 동료 개미들에게 비상경보 페로몬을 발사하며 개미귀신의 침입을 알린다. 비상이다.
개미는 다른 개미를 위해 길을 내어주고 기꺼이 페로몬을 방사한다. 참, 오지랖이 넓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늘어진 몸을 돌돌 말고 앉아서 빈 화면을 바라본다.
왜 앉아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잊었다.
어화둥둥, 도둑맞은 곳간처럼 머릿속이 텅 비었다.
티브이를 켜니 오디션 참가자에게 심사위원이 말한다.
교회 오빠 같은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는 없나요.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오빠 이미지를 보여줄 순 없나요.
한 가지 색깔 말고 다양한 색깔로 노래할 수는 없나요.
본능을 지하의 무저갱으로 밀어 넣은 자아는 꼭두각시,
세상의 책들이 던지는 세뇌의 올가미에 갇혀 색맹이 된다.
무채색 표정과 경계를 넘지 않는 절제된 최면의 상태,
검은 것도 희고 흰 것도 희다고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지하에서 솟구치는 마그마는 용광로에서 벼린 본능이다.
쇠사슬에 봉인된 주문을 날름거리는 혓바닥으로 녹여라.
터져라 화산이여, 솟구쳐서 용암을 천지로 흘려보내라.
번개
바람과 먼지가 낙엽을 굴리며 공중그네를 타고
용이 서커스장의 천막을 찢고 마천루를 쌓는다.
마천루를 하늘 끝까지 쌓았던 외계인이 있었다고
사막여우 입에서 귀 다시 입으로 모래가 서걱인다.
천만 마리 두더지가 발톱이 다 빠지게 땅을 판다.
가리개를 살짝 얹어놓고 손 가리고 하늘이라 하고
사다리를 살짝 덮어두고 발 가리고 땅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 사이 둥근 발 달린 큰 지네가 지나간다.
수억 년 전 인력거를 만들었던 유인원도 있었다며
카멜레온의 몸통에서 꼬리, 다시 몸통으로 전해진다.
번개가 감히 하늘의 코털을 뽑고 땅의 거웃을 태우자
사막여우의 귀가 파랗게 질리며 이 빠진 비명을 지르고.
카멜레온의 몸이 오아시스가 되고 꼬리는 선인장이 된다.
호랑거미
꽃바람 꿀벌이 발을 헛디뎌 버둥대자
가야금에 몸 실은 호랑거미 다가온다.
지그재그 줄을 퉁겨 꿀벌을 연주한다.
그늘진 나무숲에 진양조가 출렁인다.
하얀 줄에 붉은 소리 죽죽 뻗어가고
검푸른 곡조가 입에 송알송알 맺힌다.
중중모리장단이 점점 몸통을 죄어오고
어금니 휘몰이장단 앞에 맥을 놓친다.
파르르 떨다가 이내 숨이 고요해지고
명주 수건 휘돌리는 살풀이 춤사위에
훠이훠이 생사生死의 쌍무지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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