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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숙시집 '나를 낳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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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121
나를 낳아주세요
인쇄 2021. 10. 25 발행 2021. 10. 30
지은이 고영숙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21315 인천시 부평구 평천로255번길 13, 부평테크노파크M2 903호
전화 032-883-5356 전송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999@naver.com
ISBN-978-89-6412-151-1 03810
값 9,000원
1.저자
고영숙 제주 출생. 2017년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 2020년 리토피아로 등단. 현재 다층 동인, 제주작가회의 회원.
2.시인의 말
아프다 소리 한 번 못한 채
생은 아직 초입인데,
나 살자고
얼떨결에 받아든 첫 문장이
하필 당신,
한 꺼풀씩 전생을 돌려 깎은 지환指環이었다.
2021년 여름
고영숙
3. 목차
제1부 말문이 트인 꽃잎들
나를 낳아주세요 15
원본대조필 16
야사野史의 뒤편 18
인공눈물 20
겨를 22
물에서 온 인형 24
마블링의 쓸모 26
슬픔을 양도할 수 없습니다 27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자율학습 28
가슴에는 새가 산다 30
빗살무늬의 고고학 31
첫사랑 34
오래된 백야 36
최초의 아프수 38
추억 관람 버스 40
꽃잎 스나이퍼 42
제2부 속 깊은 지층이 산다는
뒤에 오는 것들은 가장 치열하다 45
바닥 46
우물 정井 48
마음 먼저 젖는다 50
종신終身의 방 51
지중화 작업 52
정육면체의 生 54
칼질의 속성 56
생각보다 아픈 57
크레바스 58
기억의 심야식당 60
저녁의 말 62
얼음땡 63
돌의 화법話法 64
지느러미의 명명법命名法 66
제3부 거울을 꿈꾸는 물고기
갈 지之의 무르팍 69
청동거울의 노래 70
하피첩霞帔帖에 들다 72
구릉 위 도서관 74
세한도의 감정 76
부르튼 설화도舌話圖 78
금동 발자국 80
운명도감을 펼치다 83
옆구리에 누운 달 84
환영지幻影肢 86
괄호를 열고 물망物望을 닫고 88
만월의 서사 90
다산茶山을 필사하다 92
그 여름 수몰 일기 93
달맞이꽃 연대기 94
제4부 울컥, 터진 혓바늘의 비문들
동백일지 97
봄빛, 그 환한 98
사월의 귀가 100
달빛 비문碑文 102
판게아 104
후조 106
물의 지도 108
아홉수가 마를 때까지 110
기우杞憂 112
물의 무용담武勇談 114
하루는 도도새가 되었을까 116
수어手語 118
어느 섬의 짧은 고백 120
열두 밤의 자서전 122
오늘의 운세로 편집된 남자 124
해설/백인덕 슬픔을 향한 곡진한 자기 고백 125
―고영숙의 시세계
4.평가
고영숙 시인의 첫 시집, ‘나를 낳아주세요’는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한, 슬픔을 향한 곡진한 자기 고백이 주류의 정서를 형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처롭게 미화되거나 외적 세계와 결합하여 섣불리 거대 서사의 일부로 함몰하지 않는다. 오히려 끈질긴 자기 탐색과 시적 숙고를 거쳐 ‘슬픔이 아닌 것, 혹은 슬픔을 넘어서려는 것의 양태樣態’로 여러 차례 되돌아보게 하면서 우리 앞에 현시한다.
왜일까, 자꾸 ‘현실의 가려움’이 ‘현실의 어려움’으로 읽힌다. 이 작품의 ‘건기’는 축어적으로는 단순히 계절을 표시하는 용어지만(실제 우리는 ‘건기/우기’의 계절 상태도 아니다.) ‘황사’, ‘꽃가루’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봄의 특정한 구간을 지시한다. 비록 암시적이지만 이 작품을 이번 시집을 읽어내기 위한 안내로 볼 수 있다. 첫째, “나의 꽃밭에 모래보다 떨어진 사람들이 많아서/내가 일어나서 처음 본 것은 모래흙”이라는 부분에서 드러나는 운명적 비극성, 둘째로 “미세한 먼지의 감정을 파고드는 봄의 뒤 페이지들, 지우고 쓰는 지독한 감염으로 표현된 시인의 적극적 의지 발현, 끝으로 “우린 잘 어울렸을까요, 낭랑 (…) 짙은 꽃가루보다 먼저 날리는 당신”에 등장하는 ‘당신’의 정체 등이 이번 시집의 주요 동기이자 연장선에서 시인의 시적 지향점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백인덕의 해설에서
5. 작품
나를 낳아주세요
오늘도 엄마를 뽑고 있어
구석에 기대 쉬는 엄마는 뽑기가 쉬워 오늘은 팔뚝이 굵은 엄마를 뽑고 내일은 다크서클을 드리운 엄마를 뽑을 거야 눈썹 문신을 한 엄마도 있어 세상엔 거짓말처럼 웃고 있는 엄마들이 수없이 많아 엄마는 팔딱이는 소문들로 요리를 하지 가끔 지루해진 소문을 한 번 더 끓이면 엄마 냄새가 나지 나는 길쭉하게 자라고 있어 날마다 내 생일이야 매일 나를 낳아줄 엄마가 필요해 갈색 골목에 레드카펫을 깔고 모든 저녁을 기다리는 엄마 떨리는 손목으로 꽃잎을 뿌리며 우아하게 걸어가고 있어 반값으로 할인된 엄마도 갓 인화한 증명사진을 들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엄마도 두근두근 증후군을 앓고 있어 일류도 지나고 나면 가볍고 간단히 오류가 되어 버리는 세상 어제는 건너편 마트에서 엄마를 세일하고 겨울 언덕바지에 떨어지는 음악은 항상 슬로모션으로 녹았다 얼기를 반복해 유통기한이 줄어들수록 손때 묻은 엄마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어
내일 아침은 엄마가 또 나를 낳을 거야
원본대조필
이 책은 1942년 간행된 편년체 원전이다
쉰 적도 없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던
전 생애의 기록이고 삶의 보고서다
수많은 배경 중 뼈대 있는 정본을 세우고
종종 바람을 타고 다니던 호시절은
용을 써도 먹히지 않아 생략한다
구겨진 쪽의 빗금 간 시간이 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저항 없는 덮어쓰기로
찢길 일만 남은 목차가 먼지를 쓸어내린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우는 낯선 필체
위태로운 행간마다 둥둥 떠다닌다
바람은 곳곳마다 무수한 구멍을 내고
낡은 문장들에서 물큰한 울음소리가 묻어나온다
역주행에 쓸려간 물살의 흔적
기진한 몸뚱어리가 사본의 발끝으로 점점 지워진다
서늘한 등짝, 목구멍에 밀려드는 어둠처럼
흩어진 슬하의 이름들이 하나하나 지문처럼 찍히는 밤
페이지를 넘길수록 몸피가 줄어든다
풀이 죽은 문장들, 맨 끝줄 가까스로 매달리거나
긴 묵독 끝 더듬더듬 통증의 출처를 필사한다
안간힘으로 버티는 낡은 종이
아직 폐기되지 않아 원본대조필 효력이 유효한
아버지
야사野史의 뒤편
통증을 물고 잠든 어머니는 쓸쓸한 빈방이었다
방의 모서리마다 뾰족하게 발톱들이 자라났다. 비좁은 뼈들은 한쪽으로 기울고 밤이면 네 구석 숨어있던 기억들이 출몰하곤 하였다
피가 돌지 않는 다리를 주무른다. 아픈 공명의 초입은 흰 나무와 검은 나무의 생살을 깎아 만든 야사의 뒤편
범람하는 물이었고, 벼락을 삼키는 불이었고, 매 순간 수천 개로 갈라지는 캄캄한 하늘이었다
빈방으로 가는 골목 도처마다 모서리가 진 서사들이 떠돌아다녔다
잘근 십은 반달 손톱을 뱉어낸다. 잘린 달의 조각처럼 밤이 휘어진다
살 뚫고 솟아나는 간극, 끊어진 일획의 새 한 마리가 편년체로 날아간다
받들던 기단이 휑하다. 아득한 그늘의 미망. 끝까지 지키지 못한 주춧돌만은 무너지지 마라, 일곱 개의 별과 달을 방사하는 슬픈 혈족
나는 어미의 가죽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살점,
빈 방의 어둠을 갉아먹는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 검은 야사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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