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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시집 '비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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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 시인이 시집 『B flat』(비플렛, 2025년 6월 리토피아 발행, 리토피아포에지 163, 128쪽, 14,000원)을 발간했다. 2019년 《시와편견》으로 등단하여 첫 시집 『내게 말을 걸었다』를 낸 이후 두 번째 시집이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에 ‘좀 더 먼 곳에서 더 멀리 있던 나를 떠나온 자리, 밀려오는 파도의 푸른 순결을 잔기침처럼 돌려보내는, 저 물결의 순성을 익히려 낯선 그림자를 찾아온 자리에서 낯선 기류를 타고 온 나를 발견한다. 상냥한 웃음 뒤에 남아있는 익숙한 슬픔을 슬픔으로 위로받는 실금의 시인, 남아 있지 않은 관계를 쓸어 담으려고 극한적인 절망을 껴안는 시인, 그 길 위에 서 있는 내게로 외딴 샤프란 향기가 스쳐간다.’라고 적고 있다. 김 시인은 현재 《시의시간들》의 디렉터와 《Korea focus》의 편집진을 맡고 있다.
손현숙 시인은 ‘깊고 아름답고 쓸쓸한 시인의 침묵’이라는 말로 김혜주 시인의 작품을 평가했다. 손현숙 시인의 표4에 실린 글 전문을 소개한다.
깊고 아름답고 쓸쓸한 시인의 침묵을 본다.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가슴아래 통증이 오는 것도 같다. 이미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향해 걸었던 그녀의 흔적은 그래서 더 환하고 또렷하다. 기쁜 날 슬픈 날 그저 담담한 어느, 어느 날에도 시인의 그늘 속에는 선명하지만 사라진 당신이 그렇게 살아있다. 그 모습 없는 모습을 따라 발이 부르트도록 걷는 시인의 걸음은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그늘이 그늘을 지우는 방식으로 그녀는 오늘도 시를 쓴다. 김혜주 시인의 시를 읽는 내내 사라진 발목을 좇아가는 시인의 걸음은 그래서 아프다. 그리고 그 지극함 속에는 채색되지 않는 고요가 와글거린다. 어쩌면 그녀가 세상 속에서 만난 아름다움의 극치는 고요가 아니었을까. 그 고요를 따라 고요 속으로 들어간 어떤 존재를 시인은 다만, 먼 후일까지도 침묵할 뿐이다.
이 시집 속에는 문철 화가의 초현실 드로잉 30점이 들어있다. 화가 문철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미국 프렛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심사위원을 비롯해 일본 교토조형대학 국제디자인콤페 심사위원, 국가 산하기관, 시청, 구청, 기업 등 디자인 심사위원, 자문위원 등을 맡기도 했다.
화가 문철은 2023년의 첫 개인전 ‘더 모먼트(The Moment)’에 이어 2025년 6월 10일부터 2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제3전시실)에서 ‘시각디자인 48년 그리고 지금’을 연다. 동시에 워커힐 빛 라운지갤러리에서는 문철 초대전 ‘B 플렛 그리고 찰나’를 연다.
시집 속 작품
당신을 알아요
바람이 체위를 바꾸자
나무향이 깊어지면서
남십자성이 맑은 빛으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꽃이 시들어 떨어질 때
블랙홀로 던져지는 것 같아서
당신의 물병자리는 틈틈이 거짓말을 하곤 합니다
하찮은 일도 중요한 일인 것처럼
몰래 훔친 눈물도 기뻤던 일인 양
허풍 같은 소리를 하는 당신은
겨울에 태어난 여름의 물고기로 유영하며
시간의 모퉁이 쪽에 흘려 놓은 은빛 비늘 한 점 같이
당신을 알아요
봄을 기다리는 나뭇가지, 부푸는 초록의 움처럼
이별의 도착
앞서가는 이를 가로지르느라
돌아보지 못한 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네가 서 있었던 동안 나도 멈춰 보았으나
알아보지 못한 서로가
확인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보기 위하여
잠시 머물러 있었던 역
놓아주지 못한 시간과 이별하기 위해
도착해야 하였던
사실은 네가 거기 있기를 바랐던
그 길 어딘가에 흘려버렸을 한쪽 날개 마냥
너를 잃었던 내 마음의 상실로
아직은 하차하는 사람들의 걸음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림자만이라도 불러 세우고 싶었다
앞서가는 이를 앞지르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려야 했던 것은
미리 와 정해져 있던 순서였을까
놓아주지 못한 것들과 이별하기 위하여
나를 부르기 위해 가려는
바퀴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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