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도서
정치산시집 '그의 말을 훔치다'
페이지 정보

본문
리토피아포에지?89
그의 말을 훔치다
인쇄 2019. 7. 3 발행 2019. 7. 8
지은이 정치산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22162 인천 미추홀구 경인로 77(숭의3동 120-1)
전화 032-883-5356 전송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hanmail.net
ISBN-978-89-6412-116-0 03810
값 10,000원
1. 저자
정치산 시인은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바람난 치악산 , 제14회 강원문학 작가상, 전국 계간문예지 작품상, 원주문학상 수상. 리토피아 편집차장. 원주문인협회 부회장. 막비시동인.
2. 자서
시인의 말
그녀의 눈 속에 블랙홀 잠들어 있다.
그녀의 블랙홀에서 바람꽃 피고 있다.
잠시 머물다가는 바람의 대기실이다.
소소하게 불었다 가는 꽃들 거기 산다.
소소하게 불었다 가는 꽃들을 살피는 것이 나의 일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의 대기실,
그곳에서 기억을 잃지 않을까, 가족에게 짐은 되지 않을까,
종종거리는 그녀들과 부대끼며 위로받고 위로한다.
그리움으로 하루를 보내고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을 만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2019년 여름
정치산
3. 목차
제1부
달빛이 걸리다 15
그의 말을 훔치다·1 16
그의 말을 훔치다·2―사랑 18
그의 말을 훔치다·3 19
그의 말을 훔치다·4―수박 20
그의 말을 훔치다·5―전설을 기록하는 시인 21
그의 말을 훔치다·6―달빛 몸 부실 때 만나 22
그의 말을 훔치다·7―봄, 봄, 봄. 밤, 밤, 밤 23
그의 말을 훔치다·8―감쪽같아 24
그의 말을 훔치다·9―가을입니까? 25
그의 말을 훔치다·10―그림 속으로 들어 간 소녀 26
그의 말을 훔치다·11―암에 잘 걸리는 네 가지 유형 28
여우비 30
빨강 캉캉 목도리 31
천안천화千眼千話 32
흔들어요 33
제2부
깨어나는 박물관―詩話·1 37
시간 밖의 사람―詩話·2 38
기억의 열쇠, 기억의 하늘―詩話·3 39
그녀를 삼키는 뱀―詩話·4 40
어깨에 생기는 섬―詩話·5 41
기억의 시간―詩話·6 42
시간을 조각하는 새들 43
칠월 한낮 44
바람난 치악산 45
37도 2부 46
별 밭이다 47
달의 숨 훔쳐나 볼까 48
읽히는 이름입니다 49
달 속으로 스민 뱀 50
천천히 오고 있는 51
노을 52
제3부
낙서·1 55
낙서·2 56
낙서·3 57
낙서·4 58
낙서·5 59
낙서·6 60
낙서·7―동박새와 블랙홀 61
낙서·8 62
낙서·9―닫아도 열리는 문 63
낙서·10―바람의 그림자 64
낙서·11―소리를 밟고 달아나는 말들 65
낙서·12―꽂아도 닫히는 문 66
낙서·13 67
낙서·14 68
안개 69
발자국을 지우며 70
제4부
구 씨 할머니의 봄 75
병산서원 배롱나무 76
어느 순간 사라졌다 77
詩 78
내일을 기다려 79
엘리베이터에서 80
코스모스 유람선 81
달빛 취하다 82
도깨비 바람 83
이월移越상품을 기다리며 84
기억이 부러지다 85
바다 86
오십 87
그렇게 생각이 침묵한다 88
허깨비·1 89
허깨비·2 90
난화難畵, 엄마 기다리기 91
빈 의자 92
해설/박동억 끝까지 미소 짓는다는 것 93
―정치산의 시세계
4. 평가
정치산 시인의 시를 표정에 은유하자면, 그의 시는 바로 그러한 미소에 가까워지려는 인상을 준다. 그의 시를 정확히 읽기 위하여, 독자는 시인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는 섣불리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고통은 상징화되거나 암시된다. “황사로 흐려진 태양이 시궁창에 가라앉는다”(?달빛이 걸린다?)는 문장에 고통은 일몰의 풍경과 ‘시궁창’으로 상징화된다. 시 ?그의 말을 훔치다·4?의 주제인 어머니에 관한 애도 또한 이 시집 전체를 장악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내면의 고백보다 앞서는 것은 시적 수사를 통해 고통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이다. 그는 끝내 아름다워야 한다고, 삶이 ‘최면’이나 ‘도깨비놀음’이나 거짓일지라도 매 순간 아름답게 증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순간 나타나고 사라지기에 부질없어 보이는 미소 같은 것, 그러나 그러한 아름다움을 지속하려는 끈기를 닮았다. 이러한 끈기로 그의 시는 풍경과 타자를 맞이한다.
5. 작품
달빛이 걸리다
바람이 소리도 없이 선득하게 불던 봄날이다.
조롱조롱 매달린 꽃봉오리가 꺾이던 날이다.
봄이 뒤집히고 초록이 하얗게 부서지던 날이다.
벚꽃잎이 하롱하롱 쏟아져 내리던 날이다.
황사로 흐려진 태양이 시궁창에 가라앉는다.
안개로 가려진 달은 시궁창에서 떠오르고,
불어오는 바람에 아지랑이 아른아른 흔들린다.
봄은 고요해지고 팽나무 그림자에 달빛이 걸린다.
밤새 바람이 울고 안개는 느리게 울음을 가린다.
팽나무에 달빛이 들고 그림자는 달의 집에 든다.
그의 말을 훔치다·1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 칼날이 춤춥니다.
두 번째 문장을 썼을 때 가슴에 피가 흐르지 않았습니까?
세 번째 문장을 썼을 때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습니까?
당신은 심장 깊이 굳은살이 박여 칼춤을 느끼지 못합니다.
벨 수 없는 헛된 칼춤을 혼자만 신나게 췄다는 것이지요.
당신이 지금까지 써온 문장들은 다 뻥이고, 뻥인 게지요.
레드 썬!
당신이 다음 페이지에 다섯 번째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피돌기를 따라 흐르던 피가 솟구치며 칼춤이 시작됩니다.
칼끝에서 번져오는 시퍼런 칼날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심장 깊이 굳은살이 박여 칼춤을 느끼지 못합니다.
번져오는 울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기억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쓴 문장들이 참말이어서 깨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레드 썬!
당신은 심장 깊이 굳은살이 박여 칼춤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다시 다음 페이지를 쓰고 싶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쓰고 싶다면 당신 책임입니다.
피돌기를 따라 흐르던 피가 솟구치며 칼춤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시퍼런 칼들이 번쩍번쩍 춤추는 걸 바라보세요.
이미 칼끝이 당신의 심장을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드 썬!
그의 말을 훔치다·2
―사랑
그가 내게서 빼앗아간 것이지.
도망간 그녀가 훔쳐간 것이지.
십 년 전 어머니가 가져간 것이지.
달밤을 휘젓는 도깨비 춤사위에
만삭의 달이 어이없이 혼절하는 밤,
한바탕 휘젓고 가는 도깨비놀음이네.
그의 말을 훔치다·3
돌덩이가 발에 채어 굴러다닙니다.
금덩이가 되고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구우면 구울수록 변하는 돌덩이를
아흔아홉 번 구웠더니 그녀가 됩니다.
그의 말은 참말보다 더 매력적인 거짓말들이죠.
그래도 그의 말이 믿고 싶어 자꾸 굽고 있습니다.
아흔아홉 번을 구웠더니 뻥튀기가 됩니다.
그녀는 간데없고 뻥튀기 우르르 쏟아집니다.
지금까지 쏟아놓은 그의 말이 믿고 싶어져
한여름 태양 아래 다시 돌덩이를 굽고 있습니다.
구멍을 만들고 문을 만들어 숨을 틔우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훔치다·4
―수박
검은 길을 따라 개미가 기어가고 소년이 기어가고 그가 기어간다.
수박을 깨면 추억이 걸어 나오고 그가 허우적허우적 걸어 나온다.
십 년 전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우당탕 탕 도깨비가 튀어나온다.
그가 훔쳐간 태양이 튀어나오고 그녀가 훔쳐간 밤이 튀어나온다.
우당탕탕 도깨비가 춤을 추면 어머니 훠이훠이 먼 길 가신다.
검은 길을 따라 태양이 숨어들고 기나긴 여름밤이 도깨비놀음이다.
- 이전글김형숙 산문집 '곁에 있는 먼 당신' 19.07.12
- 다음글오석만 시사진집 '시간 냉장고' 19.06.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