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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 시집 '동천의 낯선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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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150
동천의 낯선 섬
인쇄 2023 7. 5 발행 2023 7. 15
지은이 은정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21315 인천시 부평구 평천로255번길 13, 903호
전화 032-883-5356 전송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hanmail.net
ISBN-978-89-6412-186-3 03810
값 14,000원
1. 저자
은정 시인은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리토피아문학회 회원이며 막비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시인의 말
시간은 협곡을 구르는 돌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을 지배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채근에 웃어넘기느라 입술이 마른다.
막막함을 지나는 바람에 물어보기도 했다.
그늘에 가려 늦게 핀 꽃에게 마음 주면서,
보랏빛 산을 건너가는 안개 속에서 답을 찾기도 했다.
묵묵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더운 가슴으로 쓴다.
2023년 여름
은 정
3. 목차
차례
제1부
도라지꽃 15
웃음 바이러스 16
반성 17
맨드라미꽃 18
찔레꽃 가시 19
어머니의 은장도 20
어머니의 바람 21
낯선 섬 22
그때가 겨울이지요 23
사슴에게 24
아침 산행 25
가을이라서 그래 26
바람을 만지면 27
말간 구절초 28
창이 그리는 그림 29
그들의 뒷모습 30
망초꽃의 잠자리 31
아픔의 무게 32
어린 부부 33
집으로 가는 길 34
꽃을 든 손 35
제2부
목련꽃 지는 봄 39
거울 앞에 서면 40
흔들리는 밤 41
나목 42
바람만바람만 43
금목서 44
회상 45
밀당 46
갈증 해소 47
칭찬한다, 봄 48
시 톤의 아이들 49
여파 50
옹이 51
문안 52
그녀의 이야기 53
타인의 시선 54
사라지는 것들 55
소통 56
노모 57
겨울 숲 반딧불이 58
달맞이꽃 시간 59
제3부
유년의 기억 63
낙엽 따라 걷는 길 64
봄 탓 65
거미에게 부탁한다 66
수난 67
늦어버린 시간 68
오늘 69
혼자의 계절 70
명분 있는 이유 71
그믐으로 가는 달 72
동백꽃 같은 이름 73
가을의 인사 74
돌아온 탕자 75
밥이 가볍다 76
제자리로 가는 길 77
바람의 길 78
비의 단상 79
바람의 흔적 80
나의 살던 고향 81
벽에 걸린 미소 82
레테의 강을 찾아서 83
내 편 84
제4부
부슬비 내린 날 87
아기 88
독백 89
자라지 않는 옷 90
가을자락 91
그냥이라는 말 92
반추 93
발아하는 봄 94
맵다 95
눈에 담긴 이야기 96
안경 뒤에 숨다—코로나19시대 97
봄의 정령 98
첫 구두 99
내 친구 100
대나무 숲에 들다 101
서글픈 봄 102
봄마중 103
오후와 3시 사이 104
자목련 105
들풀 106
해설❘백인덕 불모不毛를 극복하는 불망不忘의 시학 107
—은정의 시세계
4. 평가
우리는 시간을 개념화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과거는 이미 다 흘러갔고 그래서 현재에 아무 영향이 없는 축적물이 아니다. ‘첫’이 상징하는 것처럼 ‘구두’는 이미 기억 속의 유물이지만, “그 속에 나의 스무 살은 오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발밑에 서성이는 그림자 더 멀리 가보자고 탐색 중이”고, “아직 타인처럼 신겨진 구둣발로 새로운 길 닦고 있”는 것이다. 비약하자면, “마음의 굳은살이 나이만큼의 두께로 단단해”질 때 더 열심히 걸어갈 수 있는 그 길은 아마도 ‘시의 길’임에 분명하다. 백인덕 시인의 해설에서
5. 작품
도라지꽃
무엇이 그리워 기린 목으로 울 밖을 넘보고 있을까.
얼마나 기다렸기에 보랏빛 울음을 저리 굳게 참고 있을까.
바람이 흔들어도 빗방울이 때려도 앙다문 저 굳은 의지.
어느 새벽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마른 입술 이슬로 축인다.
그제야 방긋 피어난 꽃,
속내를 다 열어 세상을 담는다.
길섶에 서 있는 도라지꽃,
함부로 터트리지 말아 주세요.
웃음 바이러스
아가.
되뇔 때마다 더워지는 가슴.
봄 햇살 받고 또박또박 걷는 미쁨,
뭉클한 살가움,
아무것도 아닌 이름의 아름다움,
머뭇거리며 사는 인생에 꽃 같은 선물,
이른 아침 깨어나는 세상처럼 빛나는 목격.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그득하게 가둔 마음.
웃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이제 웃어도 될까.
목 놓아 웃는다.
반성
마른 바람이 젖은 머리를 만지고 지나간다.
시간의 공격을 웃어넘긴 잘못이다.
방금 지나간 바람이 선 하나를 또 그어놓고 간다.
시간 밖으로 도망칠 방법도 모른 채 어제가 쌓여간다.
서너 개의 접시를 깨트리고 돌아오는 길.
의도하지 않은 덜 여문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숨을 뱉어 놓은 가랑잎은 스스로 힘을 내려놓는다.
시간 따라 비워가는 몸을 거미줄들이 감아가는 중이다.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마음이 날아가도록 눈을 감는다.
맨드라미꽃
맨드라미꽃 닮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길가에 질펀하다.
서로 묻는 안부들이 조붓한 맨드라미꽃밭을 만들고 있다.
빨간 물방울무늬 노란 줄무늬 향기 섞인 꽃들이 흔들린다.
새벽을 살짝 열어 조금 지친 꽃들을 밀어 넣어 주고 싶다.
반짝이는 이슬 머금은 앳된 꽃잎으로 한낮의 꿈을 꾸도록.
하다만 이야기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주춤주춤 일어난다.
버스가 도착하여 몇몇이 떠나도 그림은 그대로다.
공기는 파동 치며 일어섰다가 다시 꽃 위에 주저앉는다.
한낮의 날카로운 햇볕에 시들어가는 꽃잎을 바라본다.
찔레꽃 가시
찔레꽃잎 입에 물면 산기슭을 울어대던,
어머니 울음소리 생각난다.
어린 딸을 묻고 꺼이꺼이 흐느끼던 그 길.
무명 치마 닮은 찔레꽃 필 때면,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꽃잎을 따러 간다.
가시 사이 살랑거리는 꽃잎을 따며,
옛날얘기처럼 언니를 떠올리신다.
찔레꽃 핀 후미진 길가,
조그마한 무덤을 찾아 눈물바람 하시던 어머니.
너무 일찍 별이 된 언니는,
엄마 가슴에 핀 찔레꽃 가시였다.
어머니의 은장도
서른여덟에 혼자되어 일곱 남매 품어 안고 움켜쥔 세월을 아흔일곱에 드디어 놓으셨네.
그 나이 짚어보니 어머니의 붉디붉은 오월이었네.
견고했던 언덕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으로 변해 버렸네.
막막한 발걸음을 어찌 내딛었을까.
빈집을 정리하는데 어머니 가슴팍 같은 깊은 장롱 속에서 주인 잃은 은장도 하나 숨죽여 울고 있네.
몇 번이나 날을 세우고 으름장을 놓으며 깃을 여몄을까.
한 번이라도 가슴 열어 배꽃 같은 청춘을 꺼내나 보았을까.
그날의 날 선 시간이 손바닥에서 시든 꽃으로 주저앉고 있네.
어머니의 바람
밭일하시던 어머니 딸 오는 기척에 옷자락을 날린다.
발보다 마음이 먼저 성큼성큼 밭이랑을 넘는다.
달려가 품에 안기니, 주름진 얼굴에 박꽃 웃음이 피어난다.
곁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일을 돕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희끗희끗한 귀밑머리가 애잔하다.
두 팔 벌리고 바람을 안으며 시원하다 하니,
네 신랑 품에서 오는 바람 일게다 하신다.
아마도 어머니 품에서 내어주는 바람이었겠지.
세월 흘러 어머니의 시간은 소멸되었지만,
그 바람의 향기 지금도 내게로 불고 있다.
혹여 먼 곳에서 딸 오는 기별 기다리지는 않으실까
어머니의 얼굴에 올해도 하얀 박꽃이 핀다.
낯선 섬
동천의 한가운데 낯선 섬이 생긴다.
어느새 푸른 이끼와 풀들이 섬을 감고 섬을 이룬다.
주민은 왜가리 한 마리
그마저도 좁아서 맨날 다리 하나로 섬을 지킨다.
누추한 잿빛 두루마기 바람 깃 여미며 미동이 없다.
학보다도 더 흰 새 옷 한 벌 지어 입히면 학이 될까.
먼 산 바라보는 근엄한 눈이 가끔씩 물속에 번뜩인다.
아버지 흰 두루마기 동구 밖 어두운 길 학처럼 오시네.
어린 딸이 뜀박질로 마중을 간다.
그때가 겨울이지요
겨울이 언제인지 물으셨나요.
식탁 밑 내 발이
그의 발을 더듬을 즈음이면
겨울이 온 게지요.
차디찬 내 발 위에
따뜻한 그의 발이 슬그머니
포개지지요.
그러면 겨울은 온 거랍니다.
사슴에게
어스름 새벽 검은 실루엣 발길을 붙든다.
마른 갈대 속 사슴의 무리, 밤새 생긴 그들의 마을이다.
긴 겨울 산을 버리고 어둠을 더듬어 내려온 눈에는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허기보다는 가벼웠나 보다.
분주한 그들만의 시간.
우뚝 선 몇에게 물은 조잘대며 걱정을 덜어준다.
사슴의 푸른 꿈은 멀고 마른 갈대들은 허겁지겁 사라진다.
조금만 비켜서서 우리랑 살자고.
마음의 땅 내어주면서 산에서 온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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