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도서
진채란 시집 '바람의 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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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 151
바람의 둘레
인쇄 2023. 10. 11 발행 2023. 10. 16
지은이 진채란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21315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255번길 13, 부평테크노파크M2 903호
전화 032-883-5356 전송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999@naver.com
ISBN-978-89-6412-188-7 03810
값 12,000원
1. 저자
진채란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전북 전주에 살고 있다. 2017년 ‘지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아파트 숲속 공터에 작은 텃밭을 가꾸듯 마음속에 손바닥만 한 시의 밭을 가꾸며 산다.
2. 자서
시인의 말
시인이 되면
나를 감싸고 있는 사물들이 새롭게 보이고,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아르고스 100개의 눈은 아니더라도
서너 개쯤 보는 눈이 생길 줄 알았다.
내게는 모든 게 늘 더디게 왔다.
고대하던 첫 시집을 묶는 심정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부끄럽다.
2023년 여름
진 채 란
3. 목차
제1부 아득한 오월
모르는 사람이다 15
감꽃 16
익숙한 바람 앞에서 18
그림자를 지우다 20
콩나물국밥 21
안부 22
은목서꽃 피었다 24
서학동 26
아득한 오월 27
도솔암 28
백합 피던 여름 29
소낙눈 30
봄밤 31
제2부 흙 묻은 손을 털며
오래된 35
분갈이 36
줄을 서서 38
현서야 ~~^^ 40
달그림자 41
속물 42
흙 묻은 손을 털며 44
장마 46
폭설 48
우수雨水 49
그녀 50
무릎 52
반지와 할머니 54
몸살 55
제3부 이별의 이해
왼쪽 손가락 끝 낡은 파도—근전도검사 59
서향나무 몸짓에 눈물이 60
정류장 의자 위의 꽃 62
커피—김춘수 「꽃」 패러디 64
시간이 지운 것 65
아버지 66
바람의 둘레 68
당신 70
너를 기다리며 71
11월의 처방전 72
11월 73
민들레 74
이별의 이해 76
그대 떠나도 77
제4부 그랬었지요
이팝나무 비에 젖다 81
핑계 삼아 82
예감 84
서운암에 비 내려 86
아, 능소화 88
좋은 날 89
사치 90
노스텔지아 92
데이지꽃 피어있는 집 93
그랬었지요 94
자두 95
바다와 매화 96
아카시꽃 98
해설|안성덕 기억의 현상학現象學적 고찰 99
—진채란의 시세계
4. 평가
25시의 작가 루마니아의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시인은 잠수함 속 토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했다. 토끼가 감지한 산소 농도가 승조원들에게 위험을 알리듯, 시인은 삶의 위험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지만 인류와 함께 시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시인도 그럴 것이다. 끝까지 남아서, 얄팍한 감성이나 자극하고 적당히 추억이나 소환하지 말고 모순투성이인 우리 삶의 이면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인간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특화되어있다. 현생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새겨진 유전인자이리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외부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강해지면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해진다. 불과 20만 년 전에 생겨난 호모 사피엔스가 온갖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더 명석하고 강한 종들을 물리치고 지구상에 살아남았지 않은가.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초식동물의 되새김을 기억해야 한다. 조바심치며 풀을 뜯은 소가 안전한 장소에 와 되새김하듯, 우리도 밀림의 법칙이 존재하는 삶의 현장에서 지난날을 되새기며 버텨야 한다. 흑백사진 들춰보며 오늘을 안심해야 한다. 어제는 단순히 지나가 버린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어제 속에 오늘과 내일의 좌표가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5. 작품
모르는 사람이다
철쭉이 온 천지다
동면에서 깨어나
똬리를 튼 뱀들이 거기 있다
오랜 시간 널 찾기 위해
엉킨 매듭 풀려 했지만
너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붉은 유혹처럼 피어있는 것이
바래고 향기도 없는 것이
날 쓰러뜨린다
다시 더듬거리며 실마리를 찾지만
무수한 이야기들 길을 막고
지난 시간들 벌겋게 눈을 감긴다
아아, 모르는 사람이다
감꽃
감나무 그림자처럼
등이 굽어 있다
다섯 살에 땡감으로 가버리고
일곱 살에 벌레 먹어 떨어지고
가슴속 응어리 피고 진다
뒤란 그늘 아래 빠꿈사리하던
아이들을 줍는다
사금파리처럼 감꽃
시퍼렇게 반짝인다
세월 가고 없어도
감꽃 주워 실에 꿸 자식 없어도
별인 듯 감꽃 피고진다
땡감 먹은 듯,
등 굽은 오목가슴이
평생 갑갑했다
익숙한 바람 앞에서
그곳에서 잠시 만난 바람에
한참이나 흔들렸고 인연이면 했지
저잣거리 기웃거려
날 헤매게 했던 홍어탕 집
어눌한 냄새 휘돌고
철공소 직원이 망치로 두들기듯 가슴이 울리고 아파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이라곤 혓바늘 돋은 기억뿐,
자꾸만 헛기침이 돌았지
좋아하는 공연을 보여 준다고 데려갔었지
주뼛주뼛하는 내 손 꼭 잡으며 놓치면 찾기 어렵다 했지
공연에 취해 열기에 젖어 어리벙벙 먼눈을 팔고 있었지
넌 바삐 젖은 창문에 새나가는 열기처럼 미끄러져 가는데
난 박수치며 소리 지르느라
헤매었지 차게 울었고 그 눈물에 서러웠지
가자 채송화처럼 우리가 웃었던 그곳으로
그것은 네 탓 아니니까
참으로 오랫동안 혼란스럽게 마음 다 젖었지
세월의 가파름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사라지게 했고
천금 기억을 남겨두었지
인연이면 했었지
그림자를 지우다
맺힌 마음 위에 바람 분다
어둠 속으로 분해되는 바람
냉기만이 살갗에 닿아
내 마음을 흔든다
네 생각이 깨어날까 봐
살그니 걷는다
갈 데 없는 꽉 찬 너는
바싹 움츠러진 가슴팍에 묻혀
허탈한 어깻짓으로 떨려온다
네 생각에 가슴을 베인다
성한 곳 없이
생채기만 안고 아파한다
너는 게으름도 없어
고행 같은 시간 체머리 흔들게 하는데
차가운 네 그림자 때문에
슬프게 웃었다
콩나물국밥
주저하는 나를 밀어붙였다 빨리 주문해! 하나뿐인 메뉴를 고르라 했다 탕 탕 마늘 으깨는 소리 무서웠다 곁눈질하는 기미 낀 주인아줌마의 눈길 피할 수 없었다 큰 죄라도 지은 듯 수란 못 먹어요 완숙으로요, 나는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시원할 거야, 제 입맛을 내뱉는 그의 머리 위로 낡은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았다 묻지도 않고 내 국밥 그릇에 다진 청양고추 한 숟갈, 맵고 뜨거웠다
여러 번 피고 지는 동안 비겁하게 낡았다 혼자 들른 국밥집에 헐겁게 앉았다 북적이며 호통치던 시절도 그도 이미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오후 세 시 침침한 골목이 무료했다 뜨겁고 맵기만 하던 국물이 시원하고 얼큰했다 땀이라 우기고 싶은 눈물이 왈칵, 솟았다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지는 것이라는데
아직도 네 마음 보이지 않는다
그날 피었던 은목서꽃
오늘 다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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