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작품상
제6회 아라작품상 수상자 우중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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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우중화 시인
수상작품-하루마다의 진화 외 4편
하릴없이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똥개가 되기도 한다. 질주하는 승용차 등허리에 달라붙은 나방이 되기도 한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다가 탈이 나는 고양이가 되기도 한다. 빗속에서도 날 수 있다는 모슬포 나비가 되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낸 것과 잃어버린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옷가게 안에서 어설프게 웃는 마네킹이 되기도 한다. 온종일 종종거리며 로봇을 달래는 엄마가 되기도 한다. 하루가 말짱 도루묵이라고 했다가 앗, 뜨거워 하기도 하고, 두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세 걸음 뛰다가 넘어지고는, 내일 다시 살고 싶기도 하고 그만 하루가 끝나기도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도 핑핑 돌아가는 하루를 버틴다. 날지 못하는 날개를 접고 알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간다. 하루 한 번씩 사는 것도 벅찬 이것도 하루마다의 진화이다.
―열린시학 2021년 봄호
쇠똥구리
―어머니
쇠똥구리가 소똥 말똥을 굴려요.
코끼리똥 뱀똥 쥐똥도 굴려요.
먼 옛날에는 공룡똥도 굴렸어요.
태양을 등지고 굴리며 가요.
둥글게 둥글게 다듬으며 가요.
태양이 없으면 달빛으로 굴려요.
밤에는 북극성이 길을 잡아줘요.
황토길 돌밭길 언덕배기도 굴려요.
수컷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굴려요.
길을 잃어버리는 날이 없어요.
똥 속에서 아이들이 놀아요.
―시와소금 2021년 여름호
어느 수문장의 이야기
집터를 다지는 남자가 대문을 먼저 세운다.
나무 조각을 이어 대문을 만들고 밤낮 지킨다.
젊은 날에는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들이 많다.
멍석을 깔고 앉은 이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고물장수도 방물장수도 다들 쉬었다가 간다.
소문이 넘쳐 멍석말이도 하고 방아 찧기도 한다.
닳고 닳아 반들반들한 문지방에 기억들이 논다.
삐거덕삐거덕 문짝 소리로 인기척을 듣는다.
젊은애들은 구멍 숭숭 뚫린 대문을 밀치고 떠났다.
언제부터 그는 대문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대문을 넘어서는 일이 줄며 삐그덕 소리도 저문다.
다른 집 대문들은 철제로 바뀌고 색깔도 곱다.
그의 대문은 굽은 등처럼 낮아지고 그늘만 길다.
들고양이 잠을 자고 밤뻐꾸기가 먼저 다가온다.
닫힌 대문 앞의 그도 끝내 나무가 되어갔다는,
아주 오래된 우리 동네 어느 수문장의 이야기다.
―시와소금 2021년 여름호
당신을 읽어요
손편지가 사라진 시대라지만 자주 우체통을 들여다본다.
두껍게 쌓인 고지서들 사이에 아슬하게 시집이 걸려있다.
심플해지는 삶에 우편으로 받는 시집은 서정을 부른다.
살갗이 내 피부 같지 않게 꽃들이 까맣게 말라가는 시간에
별을 담아서 꽃을 담아서 나도 그러하다고 위로를 준다.
그곳에서 애써 지키고 살아낸 생을 도시로 실어 보낸 말들,
주어 서술어에 각주까지 달아서 새벽녘까지 내려썼을 말,
화려한 이모티콘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디지털시대에,
시집 한 권이 퇴근 후의 무거운 어깨를 야무지게 받쳐준다.
네가 잠드는 시간에 한 줄 한 줄 읽으며 나는 깨어난다.
―시와경계 2021년 가을호
그녀
애인을 갖고 싶어요 연상도 좋고 연하도 좋아요.
진탕 술을 마시고 해장을 하기에는 연상이 좋지요.
영화 보고 아이스크림 들고 걷기에는 연하가 좋지요.
그들이 없는 시간들이 여름날 그림자처럼 늘어져요.
부르기만 하면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갈 텐데요.
노을은 지기도 하고 달꽃을 피우기도 하지요.
뜨거웠던 하루의 흔적이 불그스럼하게 묻어있어요.
시라도 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죠.
노래를 부르며 새벽바다를 향해 운전을 해줘요.
휴게소에서 국수를 먹고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어요.
집에도 시장에도 거리에도 상점에도 오세요.
고양이 기지개를 켜면서도 문밖으로 달릴 걸요.
―시와경계 2021년 가을호
심사평
줄광대 줄을 타듯이
해마다 수백 명의 시인이 태어난다. 신문사 신춘문예와 문학 계간지 신인상을 통해서다. 가히 시인공화국이라는 말 무색하지 않다. 족히 일만을 넘을 거라는 시인, 살아남으려면(?) 남달라야 한다. 돋을새김 되어야 한다. 그 돋을새김이 무당의 공수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되기도 하고, 적당한 미사여구로 얄팍한 감성이나 자극하고 마는 그렇고 그런 감상이 되기도 한다.
세상과 사람과 유리遊離된 시는 공허한 독백일 것인데, 일상 속 비일상이나 삶의 비의秘義 또는 이면의 진실을 말해야 할 터인데, 현학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설辭說에 그치고 마는 시가 많다. 독백 같은 공수 같은 문법이 넘쳐나는 시절, 얄팍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추억이나 소환시키는 시가 대세인 요즘, 우중화의 시는 남다르다. “손편지가 사라진” 디지털시대에도 “자주 우체통을 들여다”보게 한다. “두껍게 쌓인 고지서들 사이”에서 “서정을 부른다.” “시집 한 권이” 세상보다 넓다고 “주어 서술어에 각주까지 달아서 새벽녘까지”(「당신을 읽어요」) 손편지를 쓴다. 세상이 잠든 시간에도 홀로 깨어 “대문을 먼저 세운 남자가” “끝내 나무가 되”었다는 “아주 오래된 우리 동네”(「어느 수문장 이야기」) 전설을 짓는다.
오늘날 많은 시인이 시가 너무 어렵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너무 얄팍하고 진부해 도무지 문학성이라곤 없다는 비판 또한 비켜 가지 못한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함께 획득하는 시가 흔치 않은 작금, 줄광대 줄을 타듯이 쥘부채로 중심을 잡는 우중화의 시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지워준다. 재미가 쏠쏠한 시편들은 공감력 또한 크다. 2019년 《리토피아》로 등단하여 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를 출간했으며 막비시동인으로 맹활약 중인 우중화 시인의 ‘아라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건승을 빈다./심의위원-백인덕, 허문태, 정미소, 천선자, 박하리
수상소감
지금 영원하고 싶은 욕망이 시를 움켜잡고
반과 반 사이의 여전한 그늘 속에 꽃 한 송이가 찾아듭니다. 수없이 쓸쓸한 시간 앞에 한 줄기 빛을 봅니다. 불안하게 흔들리다가도 그래도 살아낸 오늘 저녁이 따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시를 씁니다. 지금 영원하고 싶은 욕망이 시를 움켜잡고 놓지를 못합니다. 어디까지일까요. 우리가 멈출 수 있는 시간이 닿기는 할까요. 시를 쓴다는 부끄러움이 조용히 나락으로 밀어 세웁니다. 시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그 세계가 화장기 지운 민낯을 보는 듯 낯설기까지 합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잠시 멍하게 주춤거립니다. 수상소감을 써 내려갈 화면 속에 커서만 반짝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쓰라고 잠시 토닥여주는 듯합니다. 그 토닥임으로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시 파일을 들고 무조건 찾아갔던 그 절망의 시간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시와 시인들과의 사연을 사랑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장종권 선생님과 리토피아, 아라문학 막비시동인에게 돌립니다. 오래 잘 걸어가겠습니다. 깊이 감사합니다./우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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