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계간지작품상
2014년 제1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자/리토피아 천선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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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천선자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
<수상작>
고양이, 나비를 잃어버린 아이
승용차 한 대가 화려한 불빛을 조용히 빠져나온다.
어둠이 깔린 빈집 주차장에 가 조심스럽게 선다.
정적 속에 쌓여있던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빗은 머리,
정장하의에 흰 와이셔츠 차림의 젊은 남자이다
소주, 한 손엔 검은 비닐을 들고 온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남자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페르시아 고양이와 장미꽃이 그려진 그네를 탄다.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동공이 풀린 눈동자는,
수많은 별빛으로 쏟아져 내린다.
도둑고양이가 담장 위에서 남자를 노려본다.
더러운 털과 맹한 저 눈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아버지가 키운 그 고양이,
취한 남자가 고양이를 피해 마당 끝 의자에 주저앉는다.
소주 몇 병을 더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신발을 신고 테이블 위에 오르락내리락 의자를 걷어찬다.
검은 봉지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몇 번이고 반복 하던 남자의 흐린 눈동자는 별이 된다.
몽상가가 된 남자는 검은 봉지 속으로 들어간다.
검은 봉지는 남자가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온힘을 다해 팽창한다.
빵빵해진 무력감이 남자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편안한 자세로 마당 한 가운데 눕고 달그림자가 봉지 위에 길게 눕는다.
남자는 지금 환각의 횡성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선정평>
한 세기를 넘어 비약적으로 성장, 확대되어온 우리 현대시의 저변을 생각할 때, 전국계간지작품상을 시행하게 된 것은 자못 의의가 새롭고, 다시 한 번 각 계간지들의 재도약을 다짐한다는 데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1회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시적 성취라는 측면이 간과될 수 없음은 자명한 것이고, ‘자생적 담론’을 지향하는 우리의 편집방향과도 분명한 공통점, 또는 지향점을 엿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천선자 시인은 이미 첫 시집, 『도시의 원숭이』를 통해 현대인의 비극적 일상을 시인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 이때 ‘비극적 일상’이란 시적 의미로서 어떤 숙명성을 말하며, ‘시인만의 방식을 통한 형상화’란 시적 기법을 통원한 시인의 시적 개성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이 두 가지 측면이 이번 수상작, 「고양이, 나비를 잃어버린 아이」에서는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강제된 성장의 그늘에서 ‘몽상가’가 되어버린 한 ‘젊은 남자’의 ‘환각의 횡성’을 만드는 행위가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통해 더 비극적으로 환기되고 있다. 현대성을 담보하는 일의적 조건으로서 ‘승용차’, ‘정장하의’, ‘검은 비닐’ 등의 일상적 시어가 “페르시아 고양이와 장미꽃이 그려진 그네”와 이루는 조응의 효과 등이 돋보인다. 핵심 상징으로서 ‘고양이’를 ‘나비’와 병치시킨 것도 주목할 만한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견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 내면에 숨겨진 부자연스러움, 혹은 상처나 어두운 흔적을 탐색하는 천선자 시인의 작업을 당분간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백인덕(글), 장종권
<수상소감>
영화 속 괴물 가면을 쓴 신사가 어깨를 펴고 옵니다. 나비모양의 가면을 쓴 여인도 우아하게 걸어옵니다. 늑대와 여우의 가면을 쓴 사람들도 나란히 걸어옵니다. 고양이의 가면을 쓴 여인은 레드 카펫을 밟고 옵니다. 잠자리에 들면 꾸는 꿈입니다. 나는 꿈속에서도 가면 천지인 나의 축제를 시작합니다. 아직은 미흡한 제가 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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