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계간지작품상
2023년 제10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자 이성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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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이성필
2018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한밤의 넌픽션'이 있다. 막비시동인이며 계간 '아라쇼츠' 편집장직을 맡고 있다.
당선작
국화주
식탁에 국화꽃이 웃고 있다.
축제 마치고 막 온 꽃들.
향기가 너무 짙었나.
아내가 그 앞에서 꾸벅꾸벅 존다.
국화는 국화인데
국화인데 국화는
노랑꽃 국화 보라색 국화에
내년에도 아내는 저렇게 졸겠지.
아내가 가져다 놓은 맑은 잔치에
나는 하늘하늘 젖는다.
당선작
절마다 절이 있다
밤은 심심하다.
저녁부터 심심하다.
아내는 안방에서, 딸은 딸의 방에서,
나는 식탁에서 심심하다.
각자란 자신
언제부터 우리는 공통에 얽매였나.
자신이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것인데
한방의 기찬 펀치를 기대했던 것인가.
절마다 절이 있다.
제 소원 하나씩 안고 와서 절을 한다.
올망졸망 바람을 빈다.
각자 두 손을 모은다.
자신이란 각자 서야 하는 것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잠시 반짝이기도 했다.
비슷비슷한 것들 굽어보며
밤이 어둠을 덧칠한다.
아내는 티비 보고, 딸은 카톡하고,
나는 술 마신다.
심사평
시와 생의 애환에 대한 재인식
이번 이성필 시인의 작품을 선정하면서 니체의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절규가 다시 떠올랐다. 단순 비유하여 ‘아름다운 표면’이 개별 작품들의 표현적 측면, 즉 문면文面이라면 ‘무서운 깊이’는 시적 인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적 인식은 표현을 통해 이미지로 생성되고,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형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국화주’나 ‘절寺과 절拜’ 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평범한 어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국화는 국화인데/국화인데 국화는”('국화주')이라는 연의 표현을 통해 그 의미에 물음표를 붙인다. ‘국화는 국화인데’는 사실, 사전의 편찬 형식이다. 즉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게 개별화되기 위해서는 ‘노랑’이나 ‘보라’ 같은 현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년에도 아내는 저렇게 졸겠지.”라는 예견, 즉 기대가 국화에 작동해야만 한다.
이성필 시인은 '절마다 절이 있다'는 작품에서 사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상적으로 정의되어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어 온 개념에도 물음표를 붙인다. “각자란 자신/언제부터 우리는 공통에 얽매였나./자신이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온갖 자기계발서나 성공안내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시는 그 ‘각자’를 “아내는 티비 보고, 딸은 카톡하고,/나는 술 마신다.”라고 솔직 담백하게 형상화한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이 형상화는 ‘식구食口’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각자’의 의미를 가족과 연관된 존재의 문제로 심화한다. 시인의 작업에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더 깊이 자기 묘혈을 파 내려가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담아 이 상에 선정한다./장종권, 남태식, 백인덕
당선소감
종이배에 실어캄캄한 데로 띄운다
지금도 여전히 내게 시를 주는 사람들과 바람과 꽃과 바위와 길과 골목이 있어 감사하다. 빗소리에게도 저녁에게도 밤눈에게도 살아있음으로 느끼는 절망과 고뇌 부끄러움과 추억과 무참한 욕망에게도 감사하다. 이들에게 받거나 이들로부터 줍거나 이들에게서 씻은 내 시들을 종이배에 실어 캄캄한 데로 띄운다. 누가 등잔의 심지를 올리고 출렁이던 걸 한 장 한 장 넘길까. 여전히 번쩍거리고 가물거리고 흔들리고 멀쩡하고 어두워지며 부서지며 쌓이고 꿈틀대며 쿡쿡 찌르는 것들이 있어 감사하다.
수상受賞은 수상首相이 된 것도 같고 수상水上에 서 있는 것도 같다. 수상受賞으로, 수상受賞 이후 오만과 자만에 넘어질지도 모른다. 제 우물에, 우물의 불만에 빠질지도 두고 보겠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이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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