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계간지작품상
2025년 제12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자 신은하 시인
페이지 정보

본문
제12회 전국계간지작품상/리토피아
신은하 시인
당선작
나방을 소개합니다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우화하는 아이들 중 금빛갈고리나방이 있는데요. 금빛가루 반짝이는 날개 끝이 갈고리 모양인 이 아이 애벌레는 갈 데 없는 새똥인데요. 거무틱틱 몸뚱이를 구부려 새가 찍 갈겨놓은 새똥인 척하는 건 천적을 속이는 나방의 전략인데요. 반대로 성충이 된 나방이 속임수를 쓰기도 하는데요. 참나무재주나방이 날개 접고 앉으면 딱 부러진 나무토막이고요. 산그물무늬짤름나방은 영락없이 시든 낙엽인데요. 그 또한 새들을 속이는 나방의 전략인데요, 목숨붙이들의 진정한 과업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는 것인데요. 힘과 재주가 못 미칠 때 누운 풀처럼 사는 것도 능력인데요 세상만사 개성시대라 화려하게 치장하고 과시하는 치들도 솔찬한데요. 왠일인지 똥 같고 나무토막 같고 가랑잎 같은 아이들이 노크도 없이 마음속으로 훅 날아드는데요. 누구 못지않게 머리 굴리며 애쓰던데요. 암요 살아남으면 장땡이지요. 꽃 보러 다니다가 안면을 텄는데요.
당선작
섬달천에서
여자만 갯벌에 목숨붙이들 꼼지락거리며 숨쉰다.
뽁 똑 뽁 똑, 동산에 멧비둘기도 꾹꾹거리고,
진달래꽃 동백꽃 새 옷 입고 파도소리에 졸고 있다.
고동이며 봄나물이며 보자기에 싸들고 가, 여수 장날 한 모퉁이에 퍼질러 앉는다.
고막도 고동도 달천 것이 제일이라, 달천 고동 사시라, 쑥이랑 냉이도 있어요,
한나절 해바라기로 지전 두어 장 쥐면 돼지고기, 막걸리, 영감탱이 담배 빈 보퉁이 채워온다.
밭일하고 돌아온 영감 마주하고 고깃점에 뽀얀 막걸리 자네 한 잔 나 한 잔 권한다.
지들 살기 바쁜 자식들 걱정하며 갯바람에 시커멓게 주름진 얼굴 건너보며 허허거린다.
신작
숲에서 온 편지
나는 집을 짓지 않는 꽃입니다
산에 오는 봄을 기다려 피어납니다.
누가 “와아~노루귀다!” 하길래 내 이름 알았지요.
모두들 겨울잠에 남아 뒤척일 때가 기회여요.
얼른 꽃 피워 꿀벌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전략이지요.
겨울 숲인 듯 보여도 봄을 여는 축제랍니다
이쁘다고 너무 이쁘다고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길목에 핀 아이들은 짓밟히거나 꺾여 버렸죠.
노란 복수초 하얀 변산바람꽃 몇 촉 뿌리채 뽑혔구요.
어떤 흐린 날 카메라 든 진사님들이 납시었는데요.
바람꽃 무리 주위 낙엽 검불 깨끗이 쓸어냈는데요
꽃잎에 물을 뿌리고 손전등으로 꽃심에 빛을 넣었어요.
햇살 아래 이슬 머금은 작품 사진이라는데요.
여린 친구들은 전등불빛에 화상 입었는데요.
포근한 낙엽 이불도 뺏기고 젖은 몸 밤새 달달 떨었는데요.
다음 날 흰 꽃잎 검게 변하며 시들었습니다
수많은 등산화로 다져진 골짜기는 너무 변해버렸죠.
작년 봄에는 몇몇 아이들만 간신히 피었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쓸쓸히 웃을 뿐이죠.
꽃 피고 씨를 맺어 바람 타고 날았습니다
지금 여기 옛 고향처럼 포근한 보금자리죠.
산객들 기웃거리며 이뻐라 반기지만 무서워 떨려요
그들은 우리 떨림조차 사랑스럽다고 하지만요.
할 수만 있다면 좀 더 깊숙이 숨어 피고 싶답니다.
심사평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은유
호모 사피엔스는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뇌가 크고 신체적 조건도 우수했던 네안데르탈인을 넘어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증기, 전기, 정보통신 혁명을 거쳐 AI, 인공지능 혁명의 와중이다. 가히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연에서도 산업에서도 만연한 강자 생존·적자 생존의 법칙, 살아남지 못하면 영원히 퇴출이다.
올빼미나 매의 눈을 그려 넣는 놈, 잔뜩 움츠려 뱀 대가리로 둔갑하는 놈, 애벌레나 나방들은 제 등짝에 천적이 싫어하는 안상문眼狀紋을 그려 넣거나, 포식자의 구내색口內色 같은 경악색驚愕色을 입고 산다. “목숨붙이들의 진정한 과업인 살아남”기 위해서다. 후대에 “자손을 퍼뜨리”기 위함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한목숨 부지하려 때론 “누운 풀처럼” 살기도 한다.
2025년 리토피아 ‘전국계간지작품상’에 신은하 시인의 「나방을 소개합니다」 외 1편을 선정한다. 문학이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 했을 때, ‘금빛갈고리나방’ 등 나방의 살아남는 법은 치열한 세상을 건너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일 터이다. 더불어 나방의 입장에서 절대 강자인 인간이, “노크도 없이 마음속으로 훅 날아드는” 것들을 받아주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은유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오늘도 “여자만 갯벌에 목숨붙이들 꼼지락거리”고 “동산에 멧비둘기도 꾹꾹거”린다./손현숙, 남태식, 안성덕(글)
당선소감
시는 나의 은밀한 기쁨
제가 정말 상을 받게 된 것인지, 받아도 되는 건지, 자꾸 되물었습니다.
등단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상이나 칭찬은 여전히 저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부끄럼을 타면서도 제 시가 활자화된 걸 보는 일은 은밀한 기쁨입니다.
시는 제 오랜 친구이고 시가 있어 행복하지만, 부족함을 느껴 열심히 써오긴 했습니다.
제 담금질에 대한 격려가 너무 큰 선물이어서 무겁게 받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한 편의 시를 위하여 쓰고 또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신은하
- 다음글2024년 제11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자 최서연 시인 24.09.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