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태 식
무덤에 안 드니 경칩 지난 눈바람도 무지 매섭다. 골골 휘저으며 눈발로 등성이를 내리 뭉개니 시려 가슴을 웅크려 오므린다. 눈밭에 몸을 숨기니 겨울은 아무래도 못 건넌다. 무덤에 드니 한겨울의 칼바람도 다소곳하다. 찬 기운 오래 일도록 밤새 빚은 눈의 뼈 굳히지 않고, 잠깐 든 햇살에도 모두 삭힌다. 무덤에 몸을 묻으니 겨울은 아무튼지 건넌다. 무덤에 들어 겨울을 건너니 느닷없는 봄이 오고, 드디어 무덤마저 다 벗는다. - 남태식 시집 <망상가들의 마을>에서
■ 남태식 남태식 시인은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살 드러낸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내 슬픈 전설의 그 뱀≫, ≪망상가들의 마을≫이 있다. 리토피아문학상을 수상했다.
■ 감 상 이 시대를 태평성대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각자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에 따라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칼을 든 무사가 아니라서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덤은 죽음이고, 침묵이고, 도피처이기도 하고 안식처이기도 하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산 속의 외로운 무덤이 되어 시대의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덤에 들어야 비로소 편안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직도 태평성대는 아니라는 의미이겠다. / 장종권(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