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무 현
가슴으로만 온다. 갑자기 추워진 날 휑한 바람이 불어올 때 무표정한 길을 걷다가 적막이 막아설 때 늘 가슴으로만 온다. 방안에 갇혀 아무 것도 모를 때, 무엇인지 모르고 차가운 공기를 느낄 때, 갑자기 뛰쳐나간 눈동자에 단풍이 붉게 제 몸을 벗길 때, 단 하나의 가슴으로 온다. 햇살을 보며 눈을 찔끔거리고 코가 벌렁이어도 끝내는 늘 가슴으로만 온다.
-정무현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에서
■ 정무현
경북 경주 출생.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 막비시동인
■ 감상
마음은 우리의 신체 어디에 자리잡고 있을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마음은 우리의 신체 전부가 함께 작용하는 생명의 움직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움은 가슴으로 온다의 가슴은 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지워지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 그리움이다. 아름다운 날에도, 고통스러운 날에도, 어김없이 가슴속에서 솜사탕처럼 피어나는 그리움이 있어 우리는 오늘 살아있는 지도 모른다. / 장종권(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