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조선일보 김영식 비명으로 읽는 근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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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에 잠든 한국 근·현대사의 巨人 40여명
죽어서도 화가다운 '이중섭' - 묘비 대신 돌로 된 조각 작품
비석 곳곳에 땜질 '조봉암' - 파괴 피하려 아무 글도 없어
한국 사랑한 '아사카와 다쿠미' - 일본인 주요 관광 코스로
한가위를 앞두고 성묘객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는 가운데 서울 망우리공원도 성묘객들로 붐비고 있다.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위치한 공동묘지 망우리공원에는 일반 시민이 묻힌 묘지와 함께 평상시에도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묘지가 적지 않다. 9900여기에 이르는 일반인 묘지 외에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등 한국 근·현대사를 말해주는 거인(巨人) 40여명이 잠들어 있다.
관리사무소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 보면 왼편에 '박인환 연보비'가 나온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연보비 바로 앞쪽에 난 등산로를 따라 5분 정도 내려가면 박인환 시인의 묘지가 있다. 묘지에서 탁 트인 전망을 내려다보면 저 멀리 봉화산이 보이고 그 뒤에는 구름에 가려져 흐릿한 도봉산 인수봉도 보인다. 오른편에 보이는 산은 불암산이다.
박인환 시인 묘지를 지나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 보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의 묘지가 있다. 돌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용마천 약수터가 나오고 그 옆에 높이 20m 정도 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심어진 곳에 이중섭 묘가 자리 잡고 있다. 화가의 묘답게 묘비 대신 돌로 된 조각 작품이 세워져 있다.
이중섭 묘지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소설가 최학송의 묘지를 지나다 보면 오른편으로 망우동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독립운동가 서광조(1897~1972) 선생의 묘지가 나오는데 이 길은 아차산으로 연결돼 있다.
경사길을 올라가다 보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감독 노필(1927~1966)의 묘지가 나온다. 노필은 최무룡·태현실 주연의 영화 '밤하늘의 블루스'(1966) 감독으로 유명하다. 당시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노필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같은 해 7월 삼청공원에서 목숨을 끊었다.
참배객의 관심을 끄는 곳 중 하나가 죽산 조봉암의 묘지다. 조봉암 묘지 옆에는 2m가 넘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저기 땜질한 흔적이 많다. 서울시설공단 대외협력위원회 이성준 위원장은 "과거 조봉암이 빨갱이라며 몇몇 우익세력들이 몰래 찾아와 비석을 파괴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묘지 앞 상석에 아무런 글이 새겨져 있지 않은 이유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조봉암 묘지 바로 옆은 만해 한용운이 묻힌 곳이다. 만해 묘지 바로 옆에 부인 유씨의 묘지가 함께 있다. 만해는 조선총독에게 "대처승을 허(許)해달라"며 '건백서'를 보내기도 했다. "조선 불교의 부흥을 위해, 승려가 거지 행각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도 가져 안정된 바탕에서 승려생활을 해야 불교가 발전할 수 있다"는 소신에서였다.
독립운동가의 묘가 눈에 띄는데 그중 호암 문일평은 언론을 통해 역사의 대중화에 나섰던 인물이다. 조선일보 편집 고문으로 우리 역사 속의 정신을 찾아 그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평생 노력했다.
독립운동가 박희도, 여성사회운동가 박원희의 묘를 지나면 소파 방정환의 연보비가 나온다. 큼지막한 돌계단을 5분 정도 올라가면 거대한 돌로 된 기괴한 모양의 소파 무덤이 나온다. 소파의 묘 바로 아래에는 그의 숭배자였던 최신복의 가족 3대가 묻혀 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의 묘지는 일본 참배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쿠미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림과 직원으로 조선에 와 수목연구를 했다. 당시 조선과 조선예술을 흠모해 1924년에 경복궁 집경당 내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운 산림학자다. 이성준 위원장은 "일본관광객의 서울관광 주요 코스일 만큼 일본인이 찾고 있으며 망우리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묘지"라고 말했다.
책 '그와 나 사이를 걷다-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를 쓴 김영식은 "망우리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크고, 유일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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