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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3.13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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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6,707회 작성일 06-10-0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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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1&article_id=0000021741§ion_id=103&menu_id=103

문화일보 기사 | 2003년 3월 3일 - 


현재 전국적으로 200개가 넘는 문예지가 발간되고 있다. 문예지 숫자로만 본다면, 한국은 단연 문화 선진국에 해당한다. 이러한 엄청난 문예지 숫자에도 불구하고 문예지는 지속적으로 창간되고 있다. 특히 최근 2, 3년 동안에도 ‘문학/판’, ‘문학인’, ‘문학과 경계’, ‘리토피아’, ‘문학수첩’, ‘파라 21’, ‘시인세계’등의 새로운 문예지가 속속 창간되었다. 이러한 문예지 창간 붐은 마치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불어닥친 문예지 복간과 새로운 문예지 창간 러시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예지가 이처럼 활발하게 창간되는 문화적 맥락은 무엇일까. 그 욕망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분명한 것은 문예지 자체로 수익을 올리는 출판사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동네’등의 몇몇 문예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예지 판매량은 1000부에 미달된다는 것이 문단의 정설이다(만약 문예지 판매량을 투명하게 밝히는 제도가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이 정도 판매량으로는 문예지 한 호의 원고료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문예지 창간 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명백한 경제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문예지를 발간하게 만드는 문학장의 구조와 습속에 대해서 탐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그 논리는 결코 단순하게 해명될 수 없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문예지 시장의 다원화를 들 수 있다. 전통적 문예지인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등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이제 어느 문예지도 문단에 전일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탈중심적 상황은 새로운 문예지의 탄생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신생 문예지가 새로운 문학적 상징권력을 획득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문예지를 통해 출판산업의 부수적 효과를 기대하는 출판사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문예지가 창간되고 있다. 가령, ‘문학인’을 발간하는 시공사의 경우는 지금까지는 문학출판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나 ‘문학인’의 발간과 더불어 문학출판에 적극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문예지는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문학출판을 위한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즉, 문예지를 통해서 문학적 이슈 선점과 작가 확보를 도모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문인이 발행인이 되어, 새로운 문예지 창간을 주도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종철 시인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문학수첩’이나 김준성 소설가가 편집인으로 있는 ‘파라 21’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경우는 자신의 문학적 소망을 문예지 발간을 통해 구현하는 유형에 가깝다. 이러한 욕망을 좀더 전문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이들은 김재홍, 김종회, 장경렬, 최혜실(문학수첩), 최윤, 김혜순, 박일형, 심진경(파라 21) 등의 비평가나 문인들을 편집위원으로 영입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열림원의 ‘문학/판’과 같이, 기왕에 참여해 왔던 문학출판을 좀더 본격화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의도가 새로운 문학적 트렌드를 보여주고자 하는 편집인(이인성, 소설가·서울대 교수)의 욕망과 잘 맞아떨어져 새로운 문예지 창간으로 이어진 케이스가 있다. 어찌되었든 신생 문예지가 지속적으로 창간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고무적이다. 정작 여기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은, ‘저마다 새로운 문학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는 이 신생 문예지들이 기존 문예지들과 비교하여 어떠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이다. 좀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이들 신생문예지들이 표방하는 새로운 문학적 입장은 아직 미정형이거나 다소 상투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문예지와 특별한 차이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숱한 문예지 중에서 본격적인 논쟁 중심 문예지나 재수록 중심 문예지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문단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생 문예지 창간이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명실상부한 차별성과 다양성을 확보했을 때, 우리 문학도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신생 문예지의 창간이 우리 문학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촉매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권성우객원기자·숙명여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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