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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 시인/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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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6,933회 작성일 06-10-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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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은 달팽이'

1.
베란다 바닥에 붙어 움직이는 듯 마는 듯
꿈틀거릴 때마다 축축한 몸이 반짝거린다
그는 긴 촉수 끝에 달린 두 눈으로 연신 허공을 저으며
느릿느릿 기어간다
그 느린 걸음으로도 끈적한 길 하나가 생긴다

더듬더듬 가는 먼 길

2.
그, 자꾸만 구부러지는 등을 길게 늘이며 앞으로 가고 있네 등에 달라붙은 집은 어느 풀숲에 벗어 던졌는지, 그 집 속 층층의 방안에 말아 넣었던 길 하나만 꺼내서 가고 있네 방마다 이슬 차오르던 소리, 풀벌레 소리 꿈결처럼 들리는지 귀를 쫑긋거리네 그 방벽에 어른거리던 무늬들 그의 몸에 아예 살림을 차렸는지

그, 지금 알몸으로 베란다 바닥 쓸면서 가네 떨어진 베고니아 꽃잎 한 장 핥다가 문득 보네 제 살로 스며드는 습기 찬 시간을. 달빛이 그의 몸을 막 통과하고 있네 그의 몸속에 물끄러미 누워 있는 투명한 길 하나 보이네

홍승주
2002년 ≪현대시≫로 등단
물음표 동인
추천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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