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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김가령/토르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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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27회 작성일 20-01-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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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김가령/토르소 외 1편


김가령


토르소



검은 몸통만으로 나무가 서 있다


봄은 멀었는데 잘린 부위가 간지럽다
무수히 허공을 닫았다 여는 새들, 활공의 시간이 길어졌다
10일 째 폭설, 분수는 가부좌를 튼 채 묵언수행에 빠져있었고 광장은 의미가 넓어졌다


사람들이 나무를 지나가고 있다 없는 그늘이 무색하다
꽃이 없는 꽃밭은 꽃의 무덤이라지만
가지가 없는 나무는 형벌일 뿐이다


적막을 오래 온몸에 채우면 심장에도 습기가 고인다


낮이 더 밤보다 길어져요 팔이 없어도 팔이 자라날까요


팔이 예민해진다
손가락처럼 곁가지가 돋아날 수 있을 거야
나무의 환청이 들린다


잘린 나무 앞에서 잘림을 견딘 당신은
아직 빌딩 안에 있다


감정이 토막난 채
하루 종일 푹푹 빠져서
나무를 지독히 닮은 당신
여백 너머를 보며 날갯죽지를 자꾸 확인한다





거품



거품을 괴롭히면 거품은 도망친다 사라지는 거품, 거품은 순하다 거품이 몸을 차지하면 거품은 향 속으로 숨는다 거품 앞에서 사람들은 거품을 들고 흥정한다 꽃도 바람도 바다도 거품을 믿는다


거품을 들고 목욕탕에 가면 거품은 뚝, 뚝, 쉽게 거품을 갈아치우고 거품은 쉽게 껴안는다 머리카락에서, 얼굴에서, 거품들이 소리친다 입에서도 넘쳐나는 거품들, 얼기설기 얽힌 거품들이 한곳에 모여 끓어오른다 누구의 얼굴이, 몸이, 여리게 혹은 덩어리 채 걸려나온다 때로 단단하게, 마른 거품을 문지르면 무늬가 되고 흉터가 아문다


나는 거품을 흔든다 흔들 때마다 몸에 쌓이는 거품, 거품이 나를 조절한다 거품을 숨기고 외출할 때마다 누군가를 만나면 재빨리 들러붙는다 빈틈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거품은 사회적 감각이다





*김가령 2015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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