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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윤은한/황세등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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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윤은한/황세등 외 1편
윤은한
황세등
사랑방에 촉 틔운 푸른 입술을 말리기 위해 담벼락 무연탄에 피울 불씨를 찾아 나선다. 리어카를 끌고 그곳에 가면 목소리 없는 기영이를 만난다. 황토를 캐다가 삽과 괭이가 지치면 춤추는 쇠똥구리와 죽은 나무 속에 하늘소 함께 뒹굴다가 해질 무렵이면 노을을 끌고 돌아온다. 싸리문 마당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건조실 연통은 세월이 쌓여 녹슨 쇳가루 붉게 떨어진다. 연통 사이사이 흙으로 상처를 메꾸고 수혈된 황토로 불꽃을 피운다. 삶에 새치가 앉으면서 황토밭은 매몰되고 기영의 그림자는 고분군 아래 순장의 아픔으로 풀숲에 묻혔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귀뚜라미 울어대는 자취방
샷시문에 빗물이 흘러내린다
저녁거리 사러 가는 길
첫사랑 잊은 채 이끌려간 발걸음
책방으로 옮겨지길래
품고 싶은 이름을 찾았으나
주인은 입술만 실룩실룩
되돌아 나오는데
오렌지색 표지가 가슴팍으로 쏙 들어왔다
두 번째 사랑 옆구리에 품고
살포시 들어왔다
아차! ……
비뚤어진 글을 쓰다가
마당에 벗어둔 채 깜빡했다
축축해진 구두에 젖은 사랑이 흐른다
*에이버리 코먼Avery Corman 소설 원작을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로 만든 영화 제목을 인용함.
*윤은한 2016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야생의 시간을 사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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