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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숯 외 1편/차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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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47회 작성일 11-12-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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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주일
  숯 외 1편

 

 

 

주검으로 버려졌으나 아직 살아 있는 인줏빛 열기.

죽을 때까지 재집행 당하는 사형수.

체형을 잃으면 진짜 주검이 되는 형체.

쓰다듬으면 연대기처럼 읽히는 문장.

씨족 시대부터 현재까지 기록된 사기.

한 번도 고쳐 쓴 적 없는 진본.

열람하는 이 없어 먼지 때 낀 고서.

묵을수록 값이 오르는 땅문서.

언제부터 내비게이션을 켜야 찾아갈 수 있는 외딴 섬.

실버타운 병실 번호로 기록되는 수형자.

관 크기 욕조에 담그면 아기로 환원되는 불가사의.

물로써 꽃 피운 기억을 잊지 않은 화목花木.

몸에 기록된 때를 때로 벗겨 내는 알뜨랑비누.

자식들이 늉눔늉눔 태워대는 비목碑木.

죽을 년이란 말로 반목을 일갈하는 화목和睦.

아직도 나이테 몇 칸 남은 불연소 화목火木.

인줏빛을 잃으면 버려지는 목도장.

 

 

 

 

 

 

이명원* 선생이 생각나는 시절

 

 

 

어떤 이름 뒤에 내가 나도 몰래 붙인 존칭은 슬하이다,

몸과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종속이다.

 


名園農場 간판이 교단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삼 남매를 교수로 키워냈다는

늙은 오얏나무 한 그루가 간판 그림자를 딛고 서 있다.

그 슬하에서 태어난 여린 가지가 몸통을 따라 세로로 자란다.

몸통이 가지를 보고 제자라 해야 하나.

가지가 몸통을 보고 스승이라 해야 하나.

부자지간 같기도 한 서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다가,

아무 말 않고 관망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지는 수직으로 나는 수평으로 서로 제 갈 길 간다.

 


걸음 멈추었던 여기까지가 내가 식물성으로 산 시대였다.

무릎이 굳으면 나무인지 무릎을 움직이면 사람인지,

이런 애매한 것은 또 어떻게 분별해야 하나.

이제, 무릎에서 시작되는 것을 근원이라 부르자.

생명력을 되돌려주는 존재라면 선생이라 존칭 하자.

 


타자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맞춰 나가는 일이 존경이다.

내가 나보다 어린 이명원 이름 뒤에 붙인 존칭은 침목이다.

몸통과 가지의 간격에도 가로의 침목이 있다,

발걸음 멈춘 사람이 말없이 바라봐야만 했던 시간만큼 긴.

가지는 영원한 세로성을 위해 가로성을 빌린다.

늙은 몸통은 빌려 온 가로성을 가지에게 되돌려준다.

몸통이 세로 바깥으로 여린 가지를 밀어낼 때

무릎에서 딱지 떼듯 첫 꽃잎이 떨어진다.

 


늙을로엄[耂] 슬하에 아들 子자를 들이고

함께 글월 文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게 가르칠 敎자이다.

孝를 실천하듯 文을 되돌려주는 글자에는 이타적인 그림자가 있다,

모두에게 되돌려준다는 授자와 같은.

 


세로쓰기 히라가나를 가로쓰기 한글로 위장한 敎授는

모두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리켰다.

저 자신을 가리키는 가지에는 열매가 없다.

 

스승의 그림자를 박차고 나온 이명원이 낙과할 때,

그의 입에서 되돌려준다는 말이 사라졌다.

관망자의 혀로 사라졌다는 소문 무성하던 그의 말은 오리무중이었다.

 


그의 말[言]이 내 혀에 숨겨져 있음을 발견한 오늘, 나는

서로 이야기한다는 吾자를 덧붙여 이야기 語자를 돌려준다.

 


분필 냄새나는 오얏꽃잎이 가로와 세로를 빌리면서 흩날린다.

이명원 선생이 가려운 무릎을 긁어대고 있다.

 


나는 늙은 오얏나무 슬하에 내 그림자로 강다리 괴는

낯익은 사람과 마주 보며 몸통에 대한 주체와 객체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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