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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 외 1편/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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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 외 1편
죽은 앵무새가 내 어깨에 내려앉아 노래했다
굶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옷을 주워 입고 나는 집을 나섰다
내 털을 뽑아 글을 써 그러면 돈을 벌수 있겠지
나는 유명작가의 집에서 길러진 앵무새야
어릴 적 해 넣은 금이빨 판 돈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갔다
이것만 완성되면 나는 살 수 있을 거야
올라앉은 앵무새 깃털에서 악취가 났다
너는 유명작가가 될 거야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어 먹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죽을 거야
나를 바닷가에 묻어주고 이 깃털로 글을 써
지금은 안 돼, 쌀을 사러 가야해
편집자는 놀랄 거야 독자들은 게걸들린 듯 네 책을 살 거야
삽을 한 자루 사 주홍빛 앵무새를 묻어주었다
깃털이 햇볕 위에서 일곱 가지 색으로 살아났다
이제까지 쓴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써야 해
깃털이 말했다
먹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죽을 거야
처음부터 쓸 시간이 부족해
더구나 이 글에는 내 영혼이 들어있어
이것을 보낸다면 아무도 네 책을 출판하지 않을 거야
구원은 너를 살릴 식량 속에 들어있어
앵무새 깃털이 불러주는 데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쌀이 떨어지고 사흘이 지났다
내가 죽던 날 밤 앵무새가 꿈속에 나타났다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제목은 흥미를 떨어뜨릴 것
중간은 지루해서 책장을 넘기다 졸도하도록 만들 것
갈수록 반복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결말, 마지막 문장은 첫 문장과 같을 것
표지는 화려하게 꾸미고
내용은 알 수 없는 말을 섞어놓을 것
평론은 무조건 새로운 작품이라고 극찬할 것
광고는 우주에서 처음 탄생한 문학이라는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반복적으로 독자들을 실망시킬 것
암시장에는 철 지난 책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도서 유통업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헌책을 복제해 암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서점에는 한 줄의 문장도 넣지 않는 파격으로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사진이 가판대에 걸려있었다
상금과 함께 그는 예술의 고통에 대해
널어놓는 푸념과 사생활로 신문을 장식했다
독재자와 함께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더 이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 때
그들은 예술을 되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없이 팔려나간 수상자의 책들이
헌책방에 넘치고 제자들은 그를 칭송하느라
지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헌책방만을 찾아다니던 독자들은
통제와 규칙만이 예술을 부흥시킬 수 있다던
수상자의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미로 가득 찬 여백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독재자와 어리석은 아첨꾼의 이야기를,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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