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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 외 1편/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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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51회 작성일 11-12-28 19:52

본문

   김성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 외 1편



죽은 앵무새가 내 어깨에 내려앉아 노래했다

굶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옷을 주워 입고 나는 집을 나섰다


내 털을 뽑아 글을 써 그러면 돈을 벌수 있겠지

나는 유명작가의 집에서 길러진 앵무새야


어릴 적 해 넣은 금이빨 판 돈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갔다

이것만 완성되면 나는 살 수 있을 거야

올라앉은 앵무새 깃털에서 악취가 났다


너는 유명작가가 될 거야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어 먹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죽을 거야


나를 바닷가에 묻어주고 이 깃털로 글을 써

지금은 안 돼, 쌀을 사러 가야해


편집자는 놀랄 거야 독자들은 게걸들린 듯 네 책을 살 거야

삽을 한 자루 사 주홍빛 앵무새를 묻어주었다


깃털이 햇볕 위에서 일곱 가지 색으로 살아났다


이제까지 쓴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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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이 말했다

먹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죽을 거야

처음부터 쓸 시간이 부족해

더구나 이 글에는 내 영혼이 들어있어


이것을 보낸다면 아무도 네 책을 출판하지 않을 거야

구원은 너를 살릴 식량 속에 들어있어


앵무새 깃털이 불러주는 데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드디어 쌀이 떨어지고 사흘이 지났다

내가 죽던 날 밤 앵무새가 꿈속에 나타났다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제목은 흥미를 떨어뜨릴 것

중간은 지루해서 책장을 넘기다 졸도하도록 만들 것

갈수록 반복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결말, 마지막 문장은 첫 문장과 같을 것


표지는 화려하게 꾸미고

내용은 알 수 없는 말을 섞어놓을 것

평론은 무조건 새로운 작품이라고 극찬할 것

광고는 우주에서 처음 탄생한 문학이라는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반복적으로 독자들을 실망시킬 것

암시장에는 철 지난 책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도서 유통업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헌책을 복제해 암시장에 팔기 시작했다

서점에는 한 줄의 문장도 넣지 않는 파격으로

올해의 가장 재미없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사진이 가판대에 걸려있었다

상금과 함께 그는 예술의 고통에 대해

널어놓는 푸념과 사생활로 신문을 장식했다

독재자와 함께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더 이상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 때

그들은 예술을 되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없이 팔려나간 수상자의 책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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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넘치고 제자들은 그를 칭송하느라

지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헌책방만을 찾아다니던 독자들은

통제와 규칙만이 예술을 부흥시킬 수 있다던

수상자의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미로 가득 찬 여백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독재자와 어리석은 아첨꾼의 이야기를,

첫 문장은 무조건 재미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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