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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서커스 외 1편/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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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은
서커스 외 1편
하늘을 높이 던졌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빠져나간 넋처럼 오토바이처럼 조명이 미끄러져 들어오고
붉은 천이 목 휘감고 날아올라요 팽나무 느티나무가지보다 높은
당신에게 목숨을 걸고 그래요, 난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과 나의 얼굴이 앞뒤 좌우로 돌아가요
당신과 내가 호흡을 맞추는 사이
화사한 꽃다발을 든 물고기 바람 위로 날아오고
바이올린 켜는 염소의 악보 밑에서 붉고 푸른 장미가 피어나요
G선의 음 굵고 낮게 가장 낮은 곳에서 흐르고
나를 끌어안은 당신이 회전목마처럼 날아올라요
달의 흰 뼈에서 거꾸로 매달려 노는 박쥐가 보여요
조명을 받으며 내 허리가 링처럼 구부러져요
구부러진 허리 아래로 흐르는 목덜미 그림자 길어지고
암흑 속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수천 개의 눈동자
잡았던 손끝과 손끝 놓친 칼끝처럼 떨어지고
붉은 천은 목 붙잡고 늘어지고
놀란 조명이 끈을 놓치고, 검은 암소가 뛰쳐나가고
내 겨드랑이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당신 두 발
당신 두 다리 사이에서 발밑을 내려다보다가
당신 발등 위에 내 입술을 올려놓았죠
그 순간 풀어진 천, 목에 걸린 내 그림자를 끌어올리고
오므라진 발끝 올라가고 올라가도 당신은 없어요
감아올렸다가 툭 떨어뜨리는 허공
허공을 비추는 조명은 빛이 엎드려 있는 라듐처럼 차가운 방
물고기의 날개에 피가 묻어있어요
함께 떨어지고 있는 끊어진 거미줄과 거미처럼
그러니까 착지를 하지 못한 빛의 돌기처럼
신을 놀라게 하는 영혼처럼
아직 나의 목을 거머쥐고 있는 붉은 끈
새하얀 웃음을 날리는 치맛자락
가슴 쿵 내려놓고 부챗살처럼 펼친 손 흔들며
꽃을 받고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아요
바이올린 든 흰 염소가 한 손으로 해를 굴리며
검은 도로를 걷고 있어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더 깊이
자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에요
당신, 따라오지 말아요
보리밭에서
갈매기는 갈매기 주차장에서 나비주차장에서 나비 떼가,
비행기는 비행기 주차장에서 날아올라요
풍선에 묶인 아이들이 까르르 날아가요
날아가는 아이를 찾아 하늘 높이 사라지는 사람들
외줄 같은 샛길로 걸음 옮기며
노란 갓꽃을 향해 나는 손을 뻗어요
검초록 그늘 물가로 흘려보내는 버드나무숲
이 푸른 행렬 뒤에서 풋바람은 목 내밀어 찾는 사람 있고
가슴 뻥 뚫린 원두막, 물밀듯이 밀리는 먼 길을 보고
손잡으면 매달려 있는 의미가 손목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어둠 안쪽을 붙잡은 노란 갓꽃
통증은 경계를 넘은 전희처럼 뒤틀리고
절정처럼 제자리로 돌아와요
사람들이 시간을 옮기며 돌아가도 끊임없이 꽃들은 피어나죠
빗줄기와 빗줄기의 그림자가 꽃이 피는 밤으로 그리움처럼 흘러들고
들판을 헤집는 비바람이 밤의 도로를 덮치고 천둥이 북을 치고
뒤집힌 우산살 끊어지고 우산대를 붙잡은 손들이
세상 끝까지 밀려날 것만 같죠
길 아닌 흙바닥에서 구르는 시간의 바큇자국
손 이끌려 돌아갈 생각 없는데 돌아가야 해요
몰라 까끄라기 보리꽃 하루가 다르게 따가울지
의미 없고 뻣뻣하게 망가진 우산대 같은 말,
한 소년이 이 밭가에서 몸 부풀어 쏟아내는 말 같은,
날아오르면 허공에서 깨질 지저귐 같은 이 말 들려요?
페이지마다 다른 수줍고 어설픈 표현들을 봐요
당신에게 붙잡혔던 손목에서 손끝까지 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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