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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산염불 외 1편/임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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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신
산염불 외 1편
화악산 기슭에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개가
일모一毛 시인과 함께 산다
철 지난 물가에서 놀던 개가 물어 온 번쩍이는 목걸이는
개의 목에 채워주고
돌아앉아
시인은 매일같이 화선지에 발자국을 찍고 있다
눈밭에 찍힌 참새 발자국부터 소백산에 두고 온 자신의 발자국까지
산울림 영감의 발자국을 따라 내가 그의 집에 당도한 날도 화선지에는 이름 없는 무수한 발자국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 발자국의 맨 뒤를 따라 경계가 없는 그의 묵정밭 몇 구비를 돌아내려 온다
오늘처럼 눈비 오는 날은 길 떠난 발자국들이 돌아와 화선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목걸이를 벗어놓고 졸고 있는 개의 곁에서
만재도晩才島
소중간군도 가는 배가 섬들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관매 죽항 독거*
봄날 서남 해상 국립공원
섬을 버리고 꿈꾸는 바다에 이르면
수백 마리씩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상괭이 떼
사라진 암각화를 바다는 그리고 있다
청보리 물결치는 청등 맹골 거차*
분교장 언덕에서 아이들 손뼉치고 함성을 지르면
춤사위 가파른 상괭이 떼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넘어온다
암각화 속 투창을 든 사내들 걸어나와
바다의 급소를 찌른다
상괭이들이 끌고 오다 놓친 바다가
가라앉는다
언제쯤이면 청보리 언덕의 함성 다시 듣는가
폐교 된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헛손질의 바다
소중간군도 끝머리에 쑥대머리로 웅크리고 있는
만재도는
칠산 앞바다 황금 조기 떼의 날아다니는 비늘만
무문토기에 쓸어 담는다
*조도군도 서남 해상에 있는 소중간군도小中間群島의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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