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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여름호) 독자 시 감상/쓸쓸한 사랑의 노래-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최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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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95회 작성일 11-12-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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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 (여름호) 독자 시 감상/쓸쓸한 사랑의 노래-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최제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처음 이 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쓸쓸함’이다. 그런데 작품이 쓰인지 수십 년도 지난 지금에 와서도 시인 백석의 쓸쓸함의 정서는 우리에게 가감 없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좋은 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좋은 시는 눈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울림이 있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뜬구름 잡는 소리가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다. 이 시는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결핍된 사랑, 나타샤가 부재한 상황에서 시인 갖고 있는 사랑의 순수함 독자들에게 감동과 함께 진실한 사랑에 대한 많은 생각을 던져 준다.

시 배경으로는 눈이 푹푹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화자와 나타샤가 무언가 안타까운 사랑을 한 것 같다. 그리고 특히 그 이유가 화자 자신의 어떤 가난 탓인 것 같은데 그것이 물질적인 결핍이든 정신적인 결핍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화자는 이로 인해 절망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고 화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나 때문에 내리는 것 같다는 인식을 한다. 그런데 시인의 이런 인식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직접적인 배경 제시 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절망적인 감정과 함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독자로 하여금 실제적인 눈을 넘어 절망적인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밤을 상상하게 해 준다.

그리고 푹푹 눈 내리는 날 밤 화자는 나타샤를 생각하면서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화자는 나타샤와 한 약속을 떠올린다. 그 약속이 눈이 내리는 밤에 함께 도망을 가자는 약속이었든, 약속을 했던 날이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든 어쨌든 시인은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에는 나타샤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겨울밤에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시인의 그리움은 더욱 애틋하게 전달된다. 특히 이때 소주燒酒라는 시어가 참 눈길을 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마시는 술은 맥주나 양주보다는 소주가 훨씬 잘 어울린다. 소주의 쓰디쓴 목 넘김처럼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삼키는 것은 결코 달콤할 수는 없다. 특히 그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것일 경우 목 넘김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술은 한잔 두잔 깊어만 가고 나타샤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타샤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를 생각하는 한 그녀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기다리는 한 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서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생각이 났다. ‘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부분) 사랑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도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사랑 또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의 시안詩眼이 등장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시인의 자기 위안은 나와 나타샤의 순수한 사랑이 있기에 이 세상이 더럽다는 시인의 절규처럼 들린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시인의 사랑은 일반적으로 남녀가 함께하는 사랑이 아니다. 현실에서 나타샤는 분명히 결핍되어 있고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내가 나타샤를 기다리는 행위 즉 그녀를 생각하며 소주 한 잔 마시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 행위의 순수함과 소중함은 결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이 두 행의 화자가 나인지 내 속에 와서 이야기하는 나타샤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화자를 알 수 없는 불분명한 자위적 발언은 결국 두 사람 모두의 의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의지는 나와 나타샤가 갖고 있는 결핍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신적인 사랑의 절정으로 여겨진다. 함께 세상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약속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그 약속이 실현 되는 날을 더욱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시인의 이런 절묘한 감추기는 결국 독자에게 나와 나타샤의 순수했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지금의 고통에 대해서 더욱 선명하게 전달해 준다.

어쨌든 계속 흰 눈은 폭폭 날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눈이 오늘처럼 내리는 날 함께 타고 산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했던 흰 당나귀가 어디선가 응앙응앙 울고 있다. 이 당나귀는 시인과 나타샤가 함께 타고 갈 수단으로서 결국 오늘은 나타샤가 내게 오지 않을지언정 언젠가는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흰 당나귀를 타고 나와 나타샤는 함께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날은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일 것이다.

처음 시라는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된 순간부터 ‘과연 좋은 시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공부를 해나가면서도 이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꼬리를 물고 수많은 의문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창피하게도 국문학과 4학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아직도 좋은 시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백석의 시는 뭔가 좋은 시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단출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화려한 수식도 없는 백석의 시는 독자의 눈이 아닌 가슴을 친다. 그리고 진한 여운을 남겨준다. 백석의 시가 시대를 초월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여운이 내가 시를 공부하고 읽으면서 느끼는 행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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