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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여름호) 산문/박익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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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는 정원사
하얀 찔레꽃 향기가 한동안 교정을 흔들던 4월도 가고, 진붉은 장미꽃에 5월의 하늘이 온통 붉더니 꽃잎 하나 둘 지상으로 그 자취를 지우고 있습니다.
보았는지요? 교정의 오솔길을 걷다보면 아치형 터널을 이룬 넝쿨마다 붉게 피어오르는 장미꽃송이를……, 그 장미꽃 터널을 이룬 길에는 지난 4월말 경, 하얗게 핀 찔레꽃이 진한 향을 나부꼈는데…. 웬일일까요? 한 뿌리에서 찔레꽃을 피우기고 하고 장미꽃을 피우기도 하다니요.
내가 첫 부임하던 1983년 그해 5월에도 그 뿌리에서는 넝쿨장미가 흐드러졌었지요.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같은 뿌리에서 하얀 찔레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이어 장미꽃을 피우는 이변을 보이기 시작하였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신이가 있을까요? 이건 분명 이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연유를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지요. 찔레뿌리에 장미를 접붙이어 장미꽃을 피웠지만 뿌리의 한편으로 솟아오르는 찔레 순을 막기 위해 봄이 되면 뿌리가 드러나도록 덮었던 흙을 파헤쳐 놓는다는 것을….
간혹 손을 벗어난 넝쿨의 찔레꽃은 언제나 소박맞는 여인네 형상이랄까 아님은 따돌림 당한 학생의 형상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찔레꽃의 형상에 대한 나의 느낌이 어떠하든 교정에 장미넝쿨 터널을 만든 목적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장미꽃터널을 거닐게 하여 정서적 풍요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므로 목적을 벗어난 찔레넝쿨은 분명 전지剪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물은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있습니다. 그 본질에 대한 가치는 그 본질을 대하는 대상에 의하여 인식되지요. 찔레꽃과 장미꽃은 그 마다 다른 가치를 가졌지만 그의 가치는 교정을 가꾸고자하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었지요. 우리는 장미꽃 흐드러진 5월의 하늘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제자들의 여린 가슴에 아름다운 장미향 짙은 정서가 잦아들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목적으로 인해 장미꽃 터널이 우리의 머리 위를 무지개처럼 휘둘러 피어나도록 한 것이랍니다.
교육도 이와 같아 수많은 본질적 가치 중, 우리 교육이 목적하는 가치에 맞는 본질을 우리 제자들에게 심어주고, 또는 가치 있는 본질을 접붙이고자 하는 것이지요. 우리 교육자는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입니다. 전지가위를 든 손길보다 먼저 정원에 어떤 꽃을 피울 것인가를 마음에 결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가꾸려는 제자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내 마음속에 그려놓지 못한 스승은 키 잃은 선장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전지를 위한 가위질이 필요하겠지요.
선생님, 오늘은 교정의 장미꽃터널 속에서 꽃잎 샤워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제자의 마음이 작은 화분에서
한 달여 전입니다. 요즘은 드문 광경을 목격하였지요. 어느 한 학생이 교무실로 통나무를 파서 만든 모형의 토기에 잔 잎사귀를 단 작은 넝쿨모양의 식물이 심어진 화분을 들고 들어 왔습니다. 기억하기론 세 개 가량의 화분으로 생각되며, 머뭇거리며 들고 들어온 화분이 몇 선생님의 책상에 올려진 것을 볼 수 있었지요.
한데 얼마 후에 그 중에 하나의 화분이 본교무실 뒤 출입문 밖에서 다 시들어 죽은 모습으로 놓여 있는 것을 목격하였답니다. 너무나 앙증맞은 자잘한 잎새를 달고 있던 이름 모를 풀을 생각하며 작은 연민에 빠졌습니다.
조금만 정성들여 물을 주고 햇볕을 받게 하였더라면 그 멋쩍어 하며 들고 들어왔던 제자의 마음이 아직도 살아 있을 텐데 하는 안쓰러운 생각과 기르고 키운다는 의미를 새삼스러이 되새기게 하였답니다.
기르고 키운다는 것은 마음만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고 그에 따르는 행동이 함께 하여야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역할을 통해서만이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기르고 키우는 변화를 만들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기르고 키움의 행동이 규제와 처벌보다는 칭찬과 보상이라면 그 효과는 더욱 큰 힘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스키너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은 강요나 규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상과 격려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하였습니다. 또한 공자께선 <논어>에서 ‘지도자가 법률과 형벌로 조직을 이끌어나가면 백성은 법만 피하면 형벌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이 될 것이나 지도자가 배려와 존중으로 백성을 대하면 그들은 수치심과 올바름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열두 명의 제자를 두었던 예수보다 더 많은 제자를 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작은 식물에도 안쓰러움이 일듯이 우리의 조금은 못난 제자가 있다하여 규제와 처벌보다는, 옳고 그름은 분명히 하되 격려하며 존중하는 학교 풍토를 만들어 간다면 분명, 멋쩍어 하며 교무실문을 삐끔이 열고 들어오는 진솔한 제자의 마음이 작은 화분에서 파랗게 무럭무럭 자랄 거라 믿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오늘은 나의 책상에 놓여진 난분蘭盆에 흠뻑 물을 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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