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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여름호) 특집 젊은 비평가들이 읽은 아프리카 문학/ 전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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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34회 작성일 11-12-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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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와 한국, 지도의 계보학

전철희|문학평론가



얼마 전 한국은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했다. 몇몇 언론은 한국의 군인들이 소말리아에서 승전보를 울렸다고 자축했고, 한편에서는 인질의 안전 등을 고려할 때 성급한 행동이자 비인도적 군사작전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소탕작전’의 추이는 한국에 낯설게만 느껴지던 소말리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감옥이 소말리아의 호텔보다 편안하다는 한 해적의 말은 화제가 되었다. 소말리아의 비극적인 현실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이 말은 한국과 소말리아 사이에 있는 커다란 경제적 격차를 보여준다. 어쨌든 이 일을 겪은 이후 소말리아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된 것 같다. 응징해야할 잠재적 범죄자(테러리스트)들의 집합체로 보는 관점과, 우리가 시혜를 베풀어야 할 불쌍한 국가로 보는 관점으로 말이다.

이 두 시각은 간과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를 단순히 못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치부한다는 면에서 공통점도 있다. 이런 시각은 소말리아를 신비화하고 그들의 생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해적 소탕작전이 한참 화제가 되었을 때에도 한국 언론에서 소말리아의 역사나 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보도는 찾기가 힘들었다.

누르딘 파라의 지도는 그런 우리에게 제국주의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소말리아의 상황을 환기시켜줄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1977년 전후의 오가덴이다. 당시 에티오피아를 지원하는 미국과, 소말리아를 지원하는 소련은 대리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1978년 이후에는 반대로 소련이 에티오피아를, 미국이 소말리아를 지원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지원국이 바뀐 아이러니한 상황이 집약적으로 보여주듯, 이것은 거창한 명분이나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냉전 시대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견제정책의 산물이었다.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국경 사이에 끼어있는 오가덴은 당시 이 전쟁의 주요한 피해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대가 배경이라고 해서 지도가 전쟁의 참상, 예컨대 탱크나 폭격기가 마을을 헝클어놓는 모습 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에티오피아계인 미스라와 소말리아인 아스카르가 겪는 일들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간접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당시 소말리아의 구체적인 실태를 알고 싶었던 필자에게 다소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쟁의 참상을 효과적으로 그리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스라는 암하릭어(에티오피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자신이 에티오피아인임을 티내지 않고 소말리아인과 동화되어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라는 국적은 그녀가 반군의 정보를 적군에게 넘겼다는 소문이 나게 만든다. 사실 그녀는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우유를 팔았을 뿐이었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그녀가 ‘미스라트’라는 이름으로 개명했고, 에티오피아의 남자와 정분이 났다는 식으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는 정체모를 남자들에게 끌려가고, 며칠 뒤 심장이 없어진 사체로 발견된다. 어떤 종교를 가진 이들이 일종의 제의적 목적에서 그녀를 죽인 것이다.

에티오피아를 국적으로 지닌 채 소말리아인들의 사이에서 살던 미스라가 냉전 체제의 ‘제물’이 됨으로써 전쟁의 끔찍함을 상기시킨다면, 아스카르는 당시 소말리아인들의 암울한 모습을 체현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서부 소말리아 해방전선에서 활동하다가 죽었다. 부모가 없는 채 고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안정된 존재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스라와 힐랄삼촌, 살라도 숙모, 카린 등의 다양한 인물들이 그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스카르의 부모 역할을 온전히 대신해 주지 못 한다. 아스카르는 그들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대하는 아스카르의 시각은 극히 냉소적이다. 한 예로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가장 따르는 미스라를 묘사할 때조차 아스카르는 그녀가 방탕한 여자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심지어 미스라가 누명을 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털어놓을 때조차 그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고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의지할 곳이 없는 아스카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숙하다. 여기에서 조숙하다는 것은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한다면, 그에게는 자신의 미래(성장)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만사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가 한 명의 온전한 주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소설에 반복되는 ‘응시’(시선)의 모티프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작가 자신이 인정했듯이 ‘응시’는 이 소설을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개념이다. 소설에는 아스카르가 무엇인가를 처연한 눈빛으로 보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이는 더 나아가 아스카르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응시’에 불과함을 암시한다.


혹 나는 응시라는 행위로 미스라가 살고 있었고 동시에 기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세계를 존재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응시의 결과로 혹 나는 기억의 삶을 존재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기억하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아닌 기억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 그것이 응시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촉감의 결과였을까?(86쪽)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독특한 화자 설정 역시 ‘응시’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지도에서 아스카르는 ‘나’로 지칭되기도 하고, ‘너’(혹은 ‘그’)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스카르를 ‘너’라고 부르는 소설의 화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아스카르가 만들어낸 가상의 화자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 그 과정에서 그는 피고가 되었다. 동시에 그는 원고도 되고 배심원도 되었다. 결국 판사와 방청객과 목격자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가면인격을 지닌 아스카르는 그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게 털어놓았다.(481쪽)


지도의 서사 전체는 자신을 ‘나’라고 생각하는 아스카르와, 자신을 ‘너’(혹은 ‘그’)로 지칭하는 그의 ‘응시’를 축으로 전개된다. 한 명의 인물을 분열적으로 분리한 채 진행되는 소설의 구성은 아스카르가 하나의 완성된 존재로 홀로 설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과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런데 국제의 경제, 정치적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소말리아의 불안정한 상황은, 지도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에나 현재에나 소말리아인들의 의기만을 가지고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고, ‘하나의 응시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아스카르는 제국주의의 복마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말리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은유라고 할 수 있겠다.

동시에 ‘응시’는 아스카르가 강대국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지도’는 근대화 전반에 대한 환유이다. 정밀한 지리 조사가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 지도는, 세계의 지형을 정확하게 옮겨놓은 인간 이성의 결집체로 보인다. 구 모양의 지구를 2차원의 종이 위에 옮겨 놓다 보니 다소간의 왜곡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술의 발전은 정밀하고 자세한 지도 제작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도는 결코 가치중립적으로, 지형을 그리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지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냉전시대의 세계지도는 지구를 제1세계(서구권, 자본주의)와 제2세계(동구권, 스탈린주의)로 나누고, 이 두 가지에 들지 못하는 나라들은 ‘제3세계’로 뭉뚱그리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냉전 이후에도 ‘지도의 논리’는 계속 작용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아프리카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게 소말리아는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항구이자 중요한 원유 운송로로만 보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소말리아를 ‘테러와의 전쟁’의 주요 목표 국가로 설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지도를 이용한 강대국들의 ‘효율성’ 추구는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를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다 보니 지도를 가지고 있어도 “지도를 보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지도 안의 암호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226쪽)는 소말리아인들은 결국 ‘지도의 논리’의 피해자로 남게 된다. 이렇게 ‘지도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직관에 의존한 아스카르의 ‘응시’는, 그런 근대화의 논리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1945년의 8월 15일 이후부터 6.25와 분단이 닥치기 전까지의 한국을 떠올렸다. 당시는 분단을 막고,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이들의 희망과 열정으로 빛나던 시대였다.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고민을 버리지 않던 이들 중 다수는 암살이나 숙청으로 생을 마쳤다. 그래서 우리에게 해방기는 일종의 경외감만큼이나 착잡한 심정을 가지게 만드는 시기이다. 당시의 세계적 정세에서 그들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동족상잔과 분단 등의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치열한 고민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지도가 그리고 있는, 현대 소말리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세계체제의 속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소말리아의 불안정한 정치체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이런 공통점은 우리가 소말리아를 단순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독히 가난한 나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 자신의 ‘응시’라고 느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현재의 한국과 소말리아는 공통점 못지않게 차이점이 많다. 아직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빈곤국가 소말리아와 경제적·정치적인 발전을 거듭한 뒤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한국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은, 먹고 살기 위해 ‘해적’질을 해야만 하는 이들과 그들을 진압하기 위한 군대를 보내는 나라 사이의 간극처럼 쉽게 좁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정상들이 그어 놓은 38도선에 따라 반토막난 국토에서 60년을 살아온 나라의 시민으로서, 제국주의의 압력에 따라 현재도 국경이 불안정한 나라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어쨌든 강대국에 의한 분단이 반세기를 넘어 지속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파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한국에서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다.


전철희∙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제8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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