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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여름호) 신작시/ 신나는 이별 외 1편 박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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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
신나는 이별 외 1편
신나는, 이별의 순간이 왔다 먼 데서 달려온 바람이 갑자기 똬리를 틀며 주저앉는, 작별 인사가 끝나기 전 등 돌린 사람이 다른 길로 순식간에 발길을 꺾는 자리
웃자란 나뭇가지들 너의 창을 에워싸면
즐거워라,
안쪽 엿보려는 잎사귀들만 무성해
사랑할 때는 세상에 한 사람뿐이더니, 바람도 햇살도 한쪽으로만 향하더니, 이젠 당신이 너무 많아, 지하철이나 우체국 앞 육교 계단에서 툭하면 마주치는 당신, 당신들
드디어, 너무 많은 당신을 겪는 시간이 왔다
드디어, 너무 많은 당신을 겪는 시간이 왔다
너는 나의 바탕이다
한쪽으로 잔뜩 기운 타원의 길 따라
공중을 가파르게 우회하는 새 떼,
움푹 찌그러진 밥그릇 달랑 들고
문 앞 기웃거리는 상이군인을 닮았다, 고 쓰자
삐뚤삐뚤한 필체로 적히던 새들이
날갯죽지를 오그리고 새까맣게 휩쓸린다
잘못 써내려 간 글자들이
몸뚱어리를 휴지통에 구겨 넣듯
어둑한 둑길 속으로 휘청휘청 지워지는,
새들이 날아간 자리
글자들이 지워지고
허공이 백치처럼 웃는다
텅 빈 원고지처럼
날것 그대로인 네가
바로 나의 바탕이다
빈 밥그릇을 들고 무얼 담을까,
텅 빈 그릇까지 버려야 하나, 하는 순간
잠깐 썼다 지우는 새의
상형문자,
그게 바로 네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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