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2호(여름호)/신작시/침묵은 금이다 외 1편/박무웅
페이지 정보

본문
침묵은 금이다 외 1편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칼
사람을 많이 만나본 사람은 말의 칼을 지닌 검객을 안다
검객은 말의 이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람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말의 시치미를 떼기도 하고 모호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바둑처럼 전쟁의 이치를 무궁무진 품고 있다
일요일 친구들과 관악산을 올랐다
한 친구가 속이 아프다고 도중 하산했다
어느 친구의 입에서 튀어나온 농담 섞인 무심한 한마디가
친구의 마음을 베었다
친구의 위는 칼날 같은 말 한 마디에 피를 흘렸다
일본의 지진처럼 해일을 몰고 왔다
천만 마디 말씀을 침묵의 제방에 가두고
말없이 친구들과 도중 하산한다
말 한 마디가 금강석처럼 빛나 삶을 기쁘게 하는
천금의 사랑이 되기 위함이다
오랜 세월 몸을 만든 소나무 분재 같은 향기를 안고
혀는 부드러운 침묵으로 죽음을 안고 간다
칼집으로 싼 명검을 안은 검객처럼
나는 지금 혀 단속 중이다
신작로新作路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걷고서야
길이 있음을 알았다
붕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지만
시작은 언제나 길이 없었다
무지개가 서린 하늘
산 너머 먼 바다
손으로 잡을 수 없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새벽노을보다 아름다웠다
꽃샘바람이 빗질한 자리에 홍매화 꽃이 핀다
모래와 바위틈에 뿌리내린 아카시아가
오월의 산하를 향기로 물들인다
길을 걸어가는 것
히말라야 등산가처럼 새 길을 내서 도전하는 것
백두산 장백폭포처럼 생의 절규를 드러내는 것
새로 걷는 자 앞에 길은 존재의 비밀을 드러낸다
죽은 어머니가 지어주신 별명 허풍쟁이
허풍은 절벽을 넘어간 바람이 되기도 하지만
봄이 오는 길목
어머니 무덤의 아지랑이 같은 염려를 지나
신작로로 가는 야망이 되기도 한다1)
- 이전글42호(여름호)/신작시/자본주의의 이빨 외 1편/김광기 11.12.23
- 다음글42호(여름호)/신작시/이 끝없이 목차를 앞질러간 부록의 生 외 1편/서규정 11.12.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