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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고요한 밤 외 1편/박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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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우
고요한 밤 외 1편
은행잎이 돌계단에 내려앉아
삐걱대는 의자소리가 들리는군요
잠시 눈을 감는 동안
가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삐걱대는 의자소리에 맞춰
찻잔을 기울입니다
은행잎이 와글거리며 주문을 외우자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돌계단을 맴돌기 시작하는군요
도마 위의 생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욕조에서는 상어가 오리보트를 쫓고
부엌칼은 사람들을 쫒고 있군요
오늘의 특선 요리는
오리보트에 넣어 구운 상어요리입니다
지친 사람들이 도마 위에서 헐떡거리며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군요
사람 되기 좋은 우주의 첫 날 밤입니다
거룩한 탄생
잡초가 무성한 수풀에 도착한
화물선을 타기 위해
뱀은 나흘을 꼬박 밤샘했고
알몸인 나는
두렵고 두려워서
싸늘한 빈 방에 엎드려
뱀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화물선의 창을 열고
탈출에 성공한 까마귀는
잡초를 뜯어 먹고 있는 나를 흉보았고
풀독이 잔뜩 오른 나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허물을 벗으며 뱀이 되어 갔다
까마귀는 매일 날아와
혀 놀림을 가르쳐 주었고
오물오물 내뱉는 뱀 소리를 들으며
인큐베이터는 허물을 벗고
화물선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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