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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여름호)/신작시/낭만적 애인 외 1편/하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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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두자
낭만적 애인 외 1편
나란히 창턱에 앉아 똑같은 입술에 루즈를 바르고 나른한 울음들은 허공을 향해 흘러내리고 있었지 입을 틀어막고 붉은 눈알들을 눌러가며 우리는 다정한 표정에 실패했어 잠시 쉬어 간다고 했던가 햇볕 들지 않는 오후를 티스푼으로 휘휘 저으며 흘러 내리는 안경을 손바닥에 문질러 대고 있었어 잃어버린 길들을 데리고 토막난 참치캔의 바코드처럼 열심히 살았다고 어깨를 들썩거렸어
만월처럼 부풀어 오르는 잎사귀에 당신이란 말 그 때 나를 그려놓고 슬며시 사라져간 입술들 내 혓바닥에 근사한 무늬가 새겨지기도 했을까 얼굴 없는 문장들 속에서 책장 한 모퉁이에서도 펄럭이고 있네 비릿한 바람에 떠밀려 자꾸 미끄러지는 오늘, 말라버린 바다에서 기어 나오는 그는 고래를 잡으러 간다고 했던가 헐어버린 내 입속에선 고래 없는 바다가 너울대는 입김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어
3007번 국도에는 누가 있을까
후미진 커브길에서
잃어버린 수첩에서 잠깐 동안 스쳤던 기억을
털어냈다 누군가 다녀갔던 풍경들
시간과 시간 사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차창을 푸르게 물든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문 안에서 문 밖으로 흘려보내고
나를 그대에게 흘려보내고
푸른 신호등은 잠깐씩 몸을 뒤척이기도 했지
내가 그대에게로
그대가 내게로
아슬아슬 비껴나가는 길
안개를 실은 너덜거리는 현수막엔
지나간 발자국 그림자만 가득하기도 하지
풀잎 하나도 적시지 못하고 빗방울에도 스미지 못하는
멀리서 그가 온 것이 아닐까
인적도 경계도 드문 커브길
그대를 닮은 또 다른 그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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